금주성경공부교재

19-07-10 13:34

19년 7월 28일 주일성경공부교재

동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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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영광과 찬양의 노래

시편 115:1~8 

 

인도자를 위한 예화 

에릭 리들(Eric Henry Liddell, 1902~1945)은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육상 선수로 유명합니다. 그의 삶이 감동스러운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중국 선교사의 아들로 에든버러대학교 학생이었던 그는 올림픽 육상 100m 경기에서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습니다. 100m 경기 일정이 주일로 잡히자 “저는 주일에는 뛰지 않습니다”라고 선언했고, 조국을 배신한 위선자, 편협한 신앙인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 종목이 아니었던 200m 경기에서 동메달을 땄고, 400m 경기에서는 47.6초라는 세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어 자신을 비난하던 영국 국민에게 기쁨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는 시상식에서 “처음 200m는 제 힘으로 뛰었지만, 나머지 200m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가능했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영광을 받기 시작했을 때 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23세의 젊은 나이에 중국 내지 선교사로 헌신한 것입니다. 그곳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조용히 중국 영혼들을 사랑하며 복음을 전하고 전쟁과 가난으로 굶주려 있는 이들을 위해 봉사했습니다. 그리고 수용소에서 병든 이들과 어린아이들을 도우며 44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내가 만일 어떤 시상식에서 금메달 또는 대상을 받았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나요? 

본문 읽기
시편 115:1~8을 함께 읽습니다.
배경 이해하기 

115편은 할렐시입니다. 할렐시는 113~118, 136, 146~150편 등의 시로 절기 때마다 공동체가 함께 부르던 시입니다. 할렐시의 특징은 찬양 인도자가 먼저 부르면, 회중이 화답하는 형식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학자는 115편의 역사적 배경으로 이사야 36~37장을 듭니다. 즉, 히스기야왕 시절 하나님의 군대가 앗수르 군대를 물리친 사건이 배경일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학자는 115편이 114편과 문맥상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며,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공동체가 과거 삶을 회상하며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 지은 시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70인역(LXX)과 벌게이트(Vulgate) 성경은 114편과 115편을 하나의 시편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학자는 113편과 114편이 출애굽 모티브에서 하나님의 승리와 구원을 묘사한다고 보고, 115편은 하나님이 원수와 이방 민족의 위협으로부터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보호하신다는 내용으로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115편에서 시편 기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말 못하고, 보지 못하고, 냄새를 맡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무능한 우상을 의지하기보다 살아 계신 참신이신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 나누기
관찰과 묵상 
시편 기자는 영광을 누구에게 돌려야 한다고 노래하나요? 그렇게 해야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요?(1절) 

시편 기자는 영광을 오직 주의 이름에만 돌려야 한다고 노래합니다. 그 이유는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인자하심’(히, 헤쎄드)이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의미하며, ‘진실하심’(히, 에메트)은 하나님이 한 번 말씀하신 것은 이루시고야 만다는 그분의 성품을 반영합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언약적 관계와 구원 내용에 근거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제 어디 있느냐”(2절)라고 조롱합니다. 하지만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높입니다(3절).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천대에 이르기까지 복을 받지만, 불순종하면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언약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며 말씀을 거역해 결국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분의 변치 않는 사랑과 그분 이름을 걸고 맹세하신 언약으로 인해 자기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하십니다. 시편 기자는 출애굽 혹은 바벨론 포로 후 돌아온 백성을 향해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며 그분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찬양하라고 선포합니다(1절). 

적용과 나눔
나 자신을 낮추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릴 일은 무엇인가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내가 취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오스왈드 챔버스는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라는 책에서 그리스도인이라면 ‘최고의 하나님께 최상의 영광’(My Utmost for His Highest)을 돌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나는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의 이름에 걸맞은 합당한 영광을 돌려드리고 있나요? 아니면 자신을 높이며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가로채고 있진 않나요? 오늘날 현대인들은 하나님 자리에 자신이 앉고자 합니다. 과학, 의학, 스포츠, 사상, 문화가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 취하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돈, 물질, 권력, 명예, 사회적 지위를 얻으면 더 높은 인정을 얻을 수 있다고 유혹받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존귀와 영광을 하나님께만 드리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이심에도 자기를 비워(헬,케노시스)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낮아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빌 2:5~11). 이로 인해 하나님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시고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참제자도를 가르치시면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나중이 되며, 종이 되려는 자는 첫째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가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다른 영광을 추구해야 합니다. 

관찰과 묵상 
시편 기자는 사람 손으로 만들어진 우상은 어떤 특징이 있다고 말하나요?(4~7절) 

사람이 손으로 만든 우상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를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합니다. 
현대인들은 눈부신 문명과 고도로 발달한 과학과 의학 기술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신을 갈망합니다. 새로운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 때, 비행기를 새로 취항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고사를 지내거나 점집에서 점을 보는 행위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우상을 만드는 공장’과 같다고 한 칼뱅의 말처럼, 인간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거짓된 신을 만들어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우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거짓 신들의 공통점은 생명이 없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으며 아무런 능력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와 우상들(타종교)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하용조 목사의 「큐티하면 행복해집니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격적이지만, 타종교와 신들은 말하지 못하고 기도에 응답하지 못하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인격적인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만이 누리는 복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의 귀를 만드시고, 입을 만드시고, 눈을 만드신 분이기에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실 수 있는 전능자요 구원자이십니다(시 94:9). 

적용과 나눔
어려움이 닥치면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이 드나요? 주님을 믿기 전에 내가 의지하던 옛 삶의 방식이 있다면 나누어 보세요. 

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이란 책에 보면, 아담이 타락한 이후로 사람의 내면세계는 나쁜 것을 우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좋은 것조차 거짓된 신으로 만들어 버리는 ‘죄의 경향성’(sinful inclination)이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효도, 사랑, 가정, 아내, 자녀, 건강, 사업 등은 본래 좋은 것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지나치게 이것들을 사랑하거나 집착해 하나님보다 우선시하게 되면서 인간은 본성상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을 추구하게 된다고 지적합니다. 115편 8절은 아무 가치도 없는 우상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섬기는 자들은 결국 무가치한 우상과 함께 망하게 된다고 경고합니다. 세상의 신들은 순간적으로 즐겁게 해 줄지 몰라도 궁극적으로 나의 생명과 미래를 책임져 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시편 기자는 115편 9절 이하에서 참된 도움이시요 방패이신 여호와만 의지하라고 권면하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높은 사람이든 낮은 사람이든 하나님의 복이 임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본성은 하나님을 경외하기보다 마음속에 우상을 만들어 섬기려는 죄성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성도의 일상생활에서도 하나님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 자리에 자기 자신·가족·직장·돈·명예·권력을 두며, 심지어 하나님보다 교회 일을 더 추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손으로 만든 무능한 우상은 우리 영혼에 결코 만족과 기쁨을 줄 수 없습니다. 창조주요 구원자요 전능자이신 하나님만이 우리 행복의 근원이십니다. 


리더는 오늘 나눈 말씀이 기도로 마무리되도록 인도합니다. 아래 기도 제목을 1개 혹은 2개 모두 사용하거나, 필요에 따라 더 추가해도 좋습니다.
- 살아 계신 하나님 한 분만을 높이고 경외하는 삶을 살도록
- 하나님 없이 살아 보려는 우상 숭배의 죄악 된 본성을 내 마음에서 제하여 주시도록

이렇게 구성원들과 한목소리로 기도한 후 ‘말씀으로 기도하기’를 따라 읽으며 마무리하고, 중보기도(함께 기도하기)로 들어갑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문제가 생길 때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려는 죄성을 고백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참된 도움이심을 기억하고 주님만을 신실하게 의지하며, 모든 영광을 주님께만 돌리게 하소서. 
1. 이 땅의 교육자들에게 진리의 빛이 임해 그들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성’(性) 정체성을 정확히 알고, 교육 현장에서 올바른 성교육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2. 인구의 98%가 무슬림인 A국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 거짓으로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우상이 무너지고 교회가 부흥하도록 기도합시다(생명의 삶 179쪽 ‘땅끝에서 온 편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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