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성경공부교재

17-11-03 10:10

17년 10월 1일 주일성경공부교재

동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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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 아리엘이여!   이사야 29:1~8

 

인도자를 위한 예화

어거스틴은 413년부터 「신국론」을 집필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세상에 두 개의 도성(도시라기보다는 공동체)이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지상의 도성’(civitas terrena)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도성’(civitas Dei)입니다. 전자는 자기 사랑으로 영원한 진리를 외면한 채 소멸해 버릴 가치에 집착하는 자들이 만든 이 땅의 공동체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것이 영원한 듯 착각하면서 탐욕을 따라 살아가고 교만한 마음으로 전쟁을 일삼습니다. 후자는 지상에서 인기 있는 가치들에 함몰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소망하며 진리와 거룩함을 추구합니다. 이들은 땅의 잠정적인 것들을 사용하지만 평화와 삶의 완성을 바라보며 순례자처럼 살아갑니다. 어거스틴은 신을 멸시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설립된 도성과 겸손히 자신을 낮추며 신을 사랑하는 자들에 의해 설립된 도성이 서로 갈등하는 가운데 역사가 이뤄지는데, 종말에 지상의 도성은 심판을 면치 못하지만 하나님의 도성은 영원한 진리 안에 완성된다고 했습니다. 
때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도성 거민으로 시작했다 지상의 도성 거민들의 유혹에 빠져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성 거민으로 이 땅 가운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두 도성 가운데 어느 곳에 거주하며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인가요? 

본문 읽기
이사야 29:1~8을 함께 읽습니다.
배경 이해하기

이사야서는 전반부(1~35장)에서 심판을, 중반부(36~39장)에서 유다의 역사를, 후반부(40~66장)에서 구원을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그중 28~35장은 전반부의 결론에 해당하며,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심판과 축복 메시지가 번갈아 등장합니다. 본문은 북 이스라엘의 사마리아가 함락된 때(BC 722년)로부터 앗수르 왕 산헤립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한 때까지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국가가 큰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애굽과 화친하며 그 힘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유다의 위정자들에게 그 시도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경고하면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예고합니다. 또한 선지자는 하나님이 그들을 완전히 저버리지 않으시며 궁극적으로 회복과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실 것이라며 위로합니다. 그러면서 28장에 농부가 최고의 소출을 얻을 수 있도록 땅을 갈고 씨를 뿌리는 것처럼, 가을 들녘의 농부가 곡식에 따라 가장 적절한 타작 방식을 사용하여 알곡을 남김없이 거두어들이는 것처럼, 하나님도 광대한 지혜로 인간 세상을 경영하심을 강조합니다. 사마리아를 일컬어 ‘에브라임의…교만한 면류관’(28:3)이라고 불렀던 선지자는 ‘아리엘이여, 다윗이 진 친 성읍’(29:1), 곧 예루살렘으로 그 초점을 옮깁니다. 

말씀 나누기
관찰과 묵상 
하나님은 아리엘을 어떻게 심판하겠다고 하시나요?(1~4절) 아리엘은 왜 심판받는 것일까요?(참조, 9~16절)
 
하나님은 유다의 수도인 아리엘을 불타는 화로와 같이 만들어 심판하겠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영적인 무지(9~12절)와 형식적인 예배(13~14절), 그리고 애굽과의 내통(15~16절) 때문입니다.
유다에 대한 징계의 대상으로 지목된 도시는 ‘아리엘’이란 수수께끼 같은 별명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아리엘은 ‘하나님의 사자’(Lion of God)란 뜻과 ‘하나님의 화로’(Hearth of God)라는 뜻을 갖는데, 후자의 의미로 해석될 때는 성전이 있는 도성 예루살렘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은 과거 여부스 족속이 거주하던 곳으로, 다윗은 이곳을 점령해 통일 왕국의 수도로 삼았습니다. 이 성읍은 다윗 당시에 난공불락의 요새로서 사자와 같이 맹위를 떨쳤으며 성읍 내에 위치한 성전에서는 매년 3대 절기(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때마다 예배가 드려졌습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떠났고, 피 묻은 손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러 나왔는데, 이것이 하나님을 노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겠다고 선포하십니다. 심판 방법은 아리엘이 상징하는 바와 같이 예루살렘 도성을 불타는 하나님의 화로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실제로 앗수르 군대는 훗날 예루살렘의 사면을 포위하고, 대를 쌓아 공격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수치를 당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형식적인 예배만 드리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애굽’과 같은 인간적인 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북 이스라엘이 거짓된 ‘우상 숭배’로 인해 망한 반면 유다는 입술로만 하나님을 섬기고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난 형식적인 예배 때문에 망했습니다. 

적용과 나눔
회개, 사랑, 헌신, 교제 등 내가 드리는 예배에서 부족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그것을 바꾸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예수님을 믿은 지 오래되고, 신앙이 매너리즘에 빠져들면, 예배드리는 태도가 변합니다. 처음엔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은 기쁨에 감격하여 어떤 예배든 사모함으로 기다리지만, 갈수록 점점 내가 편한 예배 시간과 방법을 선호하게 되고, 들어야 할 말을 듣기보다 듣고 싶은 말을 들을 수 있는 자리만 찾습니다. 예배에서 회개와 참회를 촉구하는 목회자의 설교에 반발할 정도로 자기 의로 충만하게 되고, 준비된 마음으로 정성껏 헌금을 드리기보다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헌금합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교회를 섬길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사역의 기회를 찾기보다 예배 후 교회를 떠나 남은 휴일을 어떻게 즐길지 고민합니다. 내게 주어진 은사로 섬길 수 있는 교회를 찾기보다 내 필요를 채워 줄 수 있는 교회를 찾아다닙니다. 하나님은 바리새인과 같이 교만한 마음으로 예배하기보다 용서받았음에 감격한 마음으로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가는 세리처럼 예배드리기 원하십니다. 

관찰과 묵상 
아리엘을 치는 열방의 무리에게는 결국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나요?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한가요?(5~8절)
 
아리엘을 치는 열방의 무리는 세미한 티끌과 불려 날아가는 겨같이 연약한 존재가 될 것이며, 그들의 계획은 모두 허사가 될 것입니다. 이는 자기 백성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줍니다. 
앞서 기세등등하여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대를 쌓아 공격하던 앗수르 군대는 한순간에 세미한 티끌이나 불려 날아가는 겨와 같이 날아가 버릴 것이고, 그들의 모든 도모는 헛수고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일 가운데 개입하시고 그들을 징벌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벽력, 지진, 큰 소리, 회리바람, 폭풍, 맹렬한 불꽃과 같이 강하고 두려운 자연현상을 동반해 자신을 드러내시며 앗수르 군대를 찾아오실 것입니다. 이는 실제로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왕하 19:35)는 역사적 기록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앗수르는 예루살렘과 그 보장이 되는 든든한 요새를 점령하는 것을 매우 쉬운 일로 여겨 달려들지만, 순식간에 전멸하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습니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을 쉬운 상대로 여겨 달려들었던 바로 왕의 추격대가 홍해 속에 수장된 사건을 연상케 합니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이 형벌을 받지만 그 대적들도 파멸을 면치 못함을 보여 줌으로써 나라들의 흥망성쇠가 오로지 하나님의 손에만 달려 있음을 보여 줌과 동시에 심판 과정 속에서도 여전히 택한 백성을 사랑하시며 돌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줍니다. 

적용과 나눔
하나님은 진노 가운데서도 긍휼을 잊지 않으십니다. 이런 소망으로 견뎌 낸 일이나 지금 견뎌야 하는 일이 있다면 나누어 보세요.
 

다윗 이래 이사야 시대까지 한 번도 적에게 노략당해 본 적이 없던 예루살렘이 적의 말발굽 아래 짓밟히는 일을 당할 때 예루살렘 거민들은 두렵고 놀랐을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이야 우상을 섬기며 주를 떠난 민족이니 벌을 받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만큼은 결코 망하지 않으리라 자신하고 있었고, 선지자들도 평안을 예언해 왔기에 백성이 느꼈던 놀라움과 수치심은 더욱 심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징계는 자기 백성이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었음을 우리는 앗수르에 대한 심판을 통해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불충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를 경험할 때 절망하기보다 결국 나를 구원하시고 이전보다 더 나은 존재로 바꾸어 가시려는 하나님의 선한 의도를 깨닫고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 12:8).  

 

마음 없는 헌신, 회개와 순종 없는 예배는 하나님을 경멸하는 것입니다. 국가가 처한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강대국을 의지하는 것은 우상 숭배와 다름없습니다. 유다에 임하는 하나님의 징계는 그들을 낮추시고 정결하게 하시는 사랑의 매입니다. 잠시 후에 하나님은 유다 백성을 친 열방을 더 호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모든 역사는 인간의 계략이 아닌 하나님의 지혜로운 경영으로 성취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백성은 위기의 때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신실하게 의지하고 경외함으로 예배할 때, 하나님이 친히 방패와 요새가 되어 주십니다. 


리더는 오늘 나눈 말씀이 기도로 마무리되도록 인도합니다. 아래 기도 제목을 1개 혹은 2개 모두 사용하거나, 필요에 따라 더 추가해도 좋습니다.
- 우리의 예배가 갱신되어서 늘 통회 자복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 징계를 받을 때에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믿고 의심하지 않도록 

이렇게 구성원들과 한목소리로 기도한 후 ‘말씀으로 기도하기’를 따라 읽으며 마무리하고, 중보기도(함께 기도하기)로 들어갑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믿음의 연륜이 깊어질수록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예배하게 하소서. 위기 상황에서 먼저 주님 앞에 달려가는 믿음을 주시고, 징계를 받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 소망으로 끝까지 견디게 하소서. 
1. 우리나라 곳곳에 스며든 음란, 거짓, 술수, 동성애 등 영혼을 타락하게 하는 문화가 사라지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룩한 문화가 뿌리내리길 소망하며 기도합시다. 
2. 무슬림 난민의 유입과 사회적 불이익 등으로 요르단의 기독교인 수가 줄고 있습니다. 요르단 교회에 부흥이 임하도록 기도합시다(「생명의 삶」 177쪽 ‘땅끝에서 온 편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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