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성경공부교재

16-03-14 10:30

16년 3월 20일 주일성경공부교재

동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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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마태복음 25:31~46

 

인도자를 위한 예화 

콜택시 운전기사가 호출을 받고 손님 집 앞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자 할머니의 희미한 응답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열어 보니 모든 가구에 천이 덮여 있고 짐은 박스 안에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미안한데 짐 좀 들어 주구려. 의사 말이 내가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는데, 가족이 없어 호스피스 병원으로 들어가려는 중이오.” 기사는 할머니를 부축해 드리고 짐도 날라 주었습니다. 슬픈 표정으로 정든 집을 바라보며 차 문을 닫는 할머니에게 어디로 갈지 묻자, 할머니는 시내를 지나 병원으로 가 달라고 답했습니다. 시내로 가면 길이 많이 막힐 시간이었지만 운전기사는 할머니가 다녔던 학교와 결혼식을 올렸던 예배당과 젊었을 때 일했던 직장을 차례로 들러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호스피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집에서 출발한 지 이미 두 시간이나 지난 뒤였습니다. 할머니가 차비가 얼마냐고 묻자 운전기사는 무료라고 답했습니다. 할머니는 귀한 선물을 받았다며 고마워했습니다. 운전기사는 자신이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면 할머니가 얼마나 서운했을까를 생각하며 보람을 느꼈습니다. 

본문 읽기 
성령 안에서 마태복음 25:31~46을 함께 읽습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
 
성령의 조명하심과 인도하심 없이는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본문을 읽기 전에 인도자는 위의 시편 말씀을 상기시키며 성경의 저자이자 최고의 스승이신 성령 안에서 가장 겸손한 마음으로, 갈급한 마음으로 말씀을 읽도록 소그룹 구성원들을 일깨웁니다.

배경 이해하기 
예수님은 열 처녀 비유(1~13절)에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늘 깨어 있어야 할 것을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고, 달란트 비유(14~30절)에서는 자신의 은사를 사용해 좋은 열매를 거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본문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는 종말에 온 인류가 맞이하게 될 최후 심판이 어떤 모습인지, 성도는 그 심판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심판의 판결 기준은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 말씀대로 실천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분명하게 갈릴 것입니다.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32절)라는 구절은 마지막 날 있을 최후 심판이 유대 민족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인류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보편적이며 우주적인 사건임을 알게 합니다(28:19). 다른 비유에서처럼 예수님은 이스라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을 비유의 소재로 삼으셨는데, 마지막 때에 구별될 두 부류의 사람들을 양과 염소에 비유하십니다. 염소로 분류된 무리는 자신이 주님을 영접한 신자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주님의 뜻을 헤아리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지 않았기에 불신자와 같이 영벌을 받게 됩니다. 

본문 이해하기 
본문 속에서 빈칸에 알맞은 단어를 찾아 기록하고 그 의미를 생각해 보세요.
(개역개정)

1. 인자가 자기 ( )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 )에 앉을 것입니다(31절).
2. 인자는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목자가 ( )과 ( )를 나누듯 구분할 것이며, ( )은 오른편에, ( )는 왼편에 둘 것입니다(32~33절). 
3. 예수님은 주리고 헐벗은 형제를 돌아본 자들 곧 ( )들을 향해 지극히 ( )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께 한 것이라 하십니다(37~40절).

정답) 1. 영광, 보좌 2. 양, 염소, 양, 염소 3. 의인, 작은 자

(우리말성경)
1. 인자가 자기 ( ) 가운데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 )에 앉을 것입니다(25:31).
2. 인자는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목자가 ( )과 ( )를 나누듯 구분할 것이며, ( )은 오른편에, ( )는 왼편에 둘 것입니다(25:32~33). 
3. 예수님은 배고프고 헐벗은 형제를 돌아본 자들 곧 ( )들을 향해 가장 ( )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께 한 것이라 하십니다(25:37~40).
정답) 1. 영광, 보좌 2. 양, 염소, 양, 염소 3. 형제, 보잘것없는 사람

인도자를 위한 본문 연구
본문 연구 1: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예수님(31~33절)

예수님이 처음 이 세상에 오셨을 때는 누추한 마구간에 지극히 초라한 모습으로 오셨지만, 심판주로 다시 오실 때는 천사들과 함께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최후에 이루어질 심판을 설명하시기 위해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왜 하필 양과 염소를 예로 드셨을까요? 실제로 유대 땅에서는 양과 염소를 함께 키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양만 키우면 짐승이 습격해 왔을 때 고스란히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지만, 염소는 비교적 강한 편이어서 맹수에 대항해 싸우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양은 털이 많아 기온이 많이 내려가는 밤에도 들판에 머물 수 있지만, 염소는 털이 적어서 해가 지면 따로 구별해 따뜻한 곳에서 재우곤 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오른쪽은 진리와 영광, 생명을 상징하고(출 15:6; 왕상 2:19), 왼쪽은 어두움, 저주, 사망을 상징했습니다(삿 3:15; 삼하 20:9~10). 이 비유에서도 영생과 영광으로 들어가는 무리는 오른쪽에 있고, 영벌에 처해지는 무리는 왼쪽에 있습니다. 

본문 연구 2: 영생에 들어갈 의인(34~40절)
소외된 이들을 순전한 마음으로 돌본 사람은 실상 자신의 선행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그 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선행에 대한 보상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섬겼기 때문에 정작 자신의 선행이 알려지고 칭찬받게 되면 어리둥절해할 뿐입니다. 성도는 주님이 주신 긍휼의 마음을 따라 하나님과 사람들을 섬기는 선한 봉사에 힘쓰지만, 자신은 무익한 종이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른쪽에 두신 양과 같은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바보 같아 보입니다. 온갖 수고는 도맡아 하면서 그에 대한 보상에는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는 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예비된’이란 동사는 이미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의미하는 완료분사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연구 3: 영벌에 들어갈 악인(41~46절)

염소는 때로 고집이 세고 난폭한 모습을 보이는 까닭에 죄와 불순종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레 16:8~26). 그러나 왜 의인을 양에 비유하고 악인을 염소에 비유했느냐는 이 비유의 핵심이 아닙니다. 주님이 마지막 심판 때에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누신다는 것이 본문의 핵심입니다. 염소처럼 왼편으로 분류되어 영벌에 처해지는 사람들은 주님을 믿는다고는 하나 사실은 주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오른편에 속해 영생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주의 뜻을 따라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행했습니다. 믿음에는 의롭고 선한 행위가 뒤따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묵상 포인트 

초라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초림 때와는 달리, 주님은 마지막 때에 영광 가운데 온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오실 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우리가 고백하는 믿음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는지, 우리 믿음이 그분에 대한 순종을 수반하는지 보시며, 그에 따라 모든 사람의 영생과 영벌을 결정하십니다. 

▶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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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행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열매입니다. 내가 선을 행하는 동기는 무엇인지 솔직하게 나누어 보세요.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의인도 아니고 도저히 의인이 될 수도 없는 인생들을 향해 의인만이 해낼 수 있는 일들을 요구하시는 걸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높은 기준을 만족시키기에 턱없이 부족한 인생임을 깨닫고 우선 절망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인간 본성으로는 도무지 해낼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 냄으로써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단순히 “주여! 주여!”라고 부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님의 가르침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을 행하되 보답을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선행을 독려하기 위해 천국에서 받을 상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은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본받아 선을 행할 때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가장 큰 상급이며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장로 24명은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4:11)라고 고백하며 이 땅에서 거룩한 삶을 산 대가로 받은 금면류관을 모두 벗어 주님의 발 앞에 내려놓으며 주님께만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도 무엇을 하든지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만을 위하는 순전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2. 주리고 병들고 옥에 갇힌 것과 같은 고난을 겪었을 때, 내가 남들에게 간절히 바란 것은 무엇이었나요? 소외된 ‘작은 자’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힘든 시기가 있습니다. 그 시기를 거쳐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면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처음부터 성공 가도를 달려온 듯, 혹은 자기 능력만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듯 착각하며, 어려운 시절에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과 하나님의 은혜를 잊기도 합니다. 사랑과 선행을 실천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한때 ‘지극히 작은 자’였던 자신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도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또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조바심을 내며 고생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재정적으로 어렵거나 몸이 아플 때도 있었고, 잘못한 일도 없는데 억울하게 징계를 당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 내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재정적으로 도움을 주고, 억울함을 풀어 준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을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면, 인생의 고비를 맞고 있는 이들이 우리의 손길을 통해 삶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공동체가 치유자의 역할을 감당할 때 사회는 병들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상처받은 치유자로서 자신의 아픈 기억을 자원으로 삼아 병든 자, 소외된 자, 갇힌 자를 새롭게 하는 일에 헌신하기 원하십니다. 

기도문 
더 많이 취하고 즐기려는 세대 가운데서도 가난한 자, 병든 자, 갇힌 자에 대한 아버지 마음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가게 하소서. 

▶ 나의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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