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성경공부교재

17-01-07 21:43

17년 1월 8일 주일성경공부교재

동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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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긍휼 입은 성도의 바른 태도    디모데전서 1:12~20

 

인도자를 위한 예화

경건한 그리스도인이었던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자라던 한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아들이 목사가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6세 때 엄마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이 아빠는 아이가 7세가 되던 해에 새엄마를 맞았습니다. 아이는 이 일을 겪으며 마음의 문을 닫았고, 행실도 비뚤어져 갔습니다. 악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결국 장성한 아이는 노예 상인이 되었습니다. 어느 해 그는 아프리카에서 노예 무역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큰 폭풍우를 만나 배가 파선되는 위급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는 위기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악한 죄를 지은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실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간절한 간구는 응답되어 그는 폭풍우 속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이 사건 이후 그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자신을 기억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떤 죄인이라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전하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때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잊어도 내가 죄인이라는 것과 내가 죄에서 구원받았다는 것은 결코 잊을 수 없다.” 이 사람은 바로 영국 성공회 신부이자,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이라는 찬양시를 지은 ‘존 뉴턴’입니다. 

본문 읽기
디모데전서 1:12~20을 함께 읽습니다.
배경 이해하기

바울 서신 중에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를 목회 서신이라고 말합니다. 이 서신들이 바울이 젊은 목회자들에게 목회에 대한 지침을 주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디모데는 당시 에베소에서 목회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당부하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외적으로는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고, 내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에베소에 머물게 한 이유는 다른 교훈이 유입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3절). 양적 성장에는 질적 성장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여러 곳에 교회가 세워지기는 했지만 아직 신학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보다, 변론만 만들어 내는 헛된 말이 많이 있었습니다. 율법을 이야기한다고 하면서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일을 막기 위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정립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입기 전의 모습을 바로 알아야 했습니다. 그래야 믿음의 선한 싸움을 바로 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 나누기
관찰과 묵상 
바울이 주님께 긍휼을 입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나요?(13절) 긍휼을 입은 이후에는 어떻게 변화되었나요?(16~17절)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기 전에는 예수님에 대해서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지만, 긍휼을 입은 후에는 예수를 그리스도라 전파하는 사도가 되었고, 예수를 믿어 영생 얻는 사람들에게 본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항상 은혜와 평강을 구하는 것으로 서신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유독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에서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구합니다. 디모데에게만큼은 하나님의 긍휼이 임하기를 바랐다는 뜻입니다. 혹은 디모데가 하나님의 긍휼을 알기 바랐다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긍휼’로 번역된 헬라어 ‘엘레오스’는 ‘하나님께로부터 얻은 긍휼’을 의미합니다. 그 긍휼은 어떤 방법으로도 갚을 수 없는 구원의 은총이기도 합니다. 칼빈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사람을 아는 지식은 비례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어떤 것인지 아는 만큼 우리의 죄가 얼마나 극악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단적으로 얘기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착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이 될성부른 나무인지를 아시고 그에게 특별한 은총을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오래 참으심을 보이시고, 자신이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죄인 중의 괴수인 바울도 구원하신 분입니다. 그러니 하물며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적용과 나눔
예수님을 믿기 전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고 변화되는 과정에서 주님께 어떤 은혜와 긍휼을 입었나요?
 
찰스 콜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닉슨 대통령의 참모로 권력의 최정점에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어 교도소에 수감되는 과정 속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나중에 교도소 선교회를 세웠습니다. 찰스 콜슨은 「백악관에서 감옥까지」라는 책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의 공허한 삶과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얼마나 복된지를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모르던 시절이 얼만큼 암울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의 문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아무 것이나 다 믿습니다. 이 세상 온갖 허탄한 것들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해 거기에 인생 목표를 걸고 살아가기에 그 삶은 허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빛과 어둠을 구별할 줄 알고 생명과 사망을 구별할 줄 압니다. 또한 거룩함과 죄를 구별할 줄 압니다. 만약 우리의 삶 속에서 빛과 생명과 거룩함이 드러난다면 그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관찰과 묵상 
바울은 주님의 긍휼을 입은 디모데에게 어떤 삶을 살라고 권면하나요? 긍휼을 입은 성도는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까요?(18~19절)

바울은 디모데에게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긍휼을 입은 성도가 순종하며 취할 마땅한 태도입니다. 
긍휼을 입은 자는 후일 예수님을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15~16절). 그러기 위해서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기를 힘써야 합니다(18~19절). AD 1095년 교황 우르반 2세 때 십자군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주가 원하신다!”라는 지도자들의 한마디에 성지 예루살렘을 회복하기 위해 군인들이 벌 떼처럼 몰려왔습니다. 아마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전쟁이 하나님이 맡기신 전쟁이라고 확신했을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선한 싸움은 그런 싸움이 아닙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라”(18절)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말한 교훈은 앞에서 나온 내용, 즉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선한 싸움을 하는 내용과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또한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합니다. 목적을 이루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은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방법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선한 싸움을 싸운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합리화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은 선한 싸움을 싸우는 도구입니다. 

적용과 나눔
그리스도인으로서 감당한 선한 싸움에는 어떤 것이 있었나요? 공동체와 내가 겪고 있는 영적 싸움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요?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원리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롬 12:2). 그것이 선한 싸움입니다. 선한 싸움은 특정한 형태를 갖고 찾아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선한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지 않고 있다면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선한 싸움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세상 싸움은 싸우는 사람이 드러나지만 선한 싸움은 주님이 드러납니다. 물리적인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자칫 영적인 싸움과 물리적인 싸움을 혼동해서 세상에서 말하는 승리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세상 영광을 마다하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것이 승리입니다. 세상은 그것을 졌다고 하지만 우리는 승리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본래 거짓의 아비 마귀에게(요 8:44) 현혹되어 거짓과 죄를 쫓아 죽음을 향해 가던 죄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긍휼에 힘입어 믿음으로 구원의 큰 복을 얻었습니다. 교회 지도자를 포함해 모든 성도는 주님의 긍휼을 입은 사람으로 그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매 순간 내게 긍휼을 베푸신 주님을 기억하고 찬양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야 합니다. 착한 양심을 가지고, 영광스러운 진리의 말씀을 따라 선한 싸움을 하며, 믿음의 본보기로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삶이 곧 복음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이뤄 가시길 소원합니다. 


리더는 오늘 나눈 말씀이 기도로 마무리되도록 인도합니다. 아래 기도 제목을 1개 혹은 2개 모두 사용하거나, 필요에 따라 더 추가해도 좋습니다.
- 예수님의 긍휼을 입은 자로서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 버리고 믿음의 본이 되는 삶을 살도록
-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 대로 매 순간 믿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고 승리하는 성도가 되도록

이렇게 구성원들과 한목소리로 기도한 후 ‘말씀으로 기도하기’를 따라 읽으며 마무리하고, 중보기도(함께 기도하기)로 들어갑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죄인 중에 괴수인 저를 구원하셔서 새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긍휼을 입은 사람답게 착한 양심을 가지고, 선한 싸움에서 날마다 승리하며, 믿음의 본이 되게 하소서. 
1. 신년을 맞이하여 특별 새벽기도회, 말씀 사경회, 부흥회 등 우리 교회와 한국 교회에서 진행되는 모든 집회가 하나님 뜻 안에서 성령의 인도로 이루어지도록 기도합시다.
2. 구소련에서 독립한 조지아는 목회자 지원이 가능한 교회가 거의 없습니다. 일용할 양식이 채워지고, 특히 젊은이들에게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달되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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