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성경공부교재

14-05-26 12:55

6월 1일 첫째주 주일 성경학교 성경공부 교재입니다.

동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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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복수로 갚는 압살롬  사무엘하 15:1~12 

 

이야기속으로
아래 질문들은 이번 과의 주제에 대한 괄적인 나눔을 이끄는 것입니다. 이 질문들의 목적은 솔직한 방식으로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데 있습니다. 정답이 아닌 각자의 답을 나누고, 주제에 대해 생각이 열렸다고 판단되면 '본문 속으로' 넘어가십시오.
압살롬은 이스라엘 왕이 되기 위해 정치 세력을 모으고 백성의 인기를 얻어 지지층을 확보한다. 세상 기준으로 볼 때, 그는 성공적으로 자기 계획을 이루어 가고 있다. 그러나 압살롬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왕이 아니었다. 인간이 아무리 철저하게 일을 도모한다 해도,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 과연 나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며 하나님 나라의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군 복무를 마친 아들이 건강하게 돌아왔다. 그러나 청년 실업이 사회 문제인 현실을 보자니 자꾸 조바심이 생겨 은근히 아들에게 눈치를 주고 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가르쳐 준다. 자신을 믿고 자기 힘만으로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세상 기준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답답하고 어리석어 보인다. 주님은 내게 물으신다. “아들의 삶이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 속에 있음을 온전히 믿느냐?” 밀려오는 평안함으로 아들에게 위로의 문자를 날린다. “네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한다. 아들아, 사랑해.”

* 대중 매체에 흔히 등장하는 “너 자신을 믿어!”라는 메시지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인도자를 위한 예화
헨리 나우웬은 사랑을 첫째 사랑과 둘째 사랑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무조건적이고 무제한적인 사랑은 ‘첫째 사랑’입니다. 사도 요한은 서로 사랑하라면서 그 이유를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아무 조건이나 제한 없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만큼 첫째 사랑은 가치를 인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부모와 스승, 배우자, 친구로부터 받는 인정이나 애정, 연민, 격려와 지원 등은 바로 ‘둘째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한계가 있고 깨어지기도 쉽습니다. 둘째 사랑의 이면에는 거절이나 거짓, 폭력, 심지어 증오심까지 도사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우정과 결혼, 그리고 공동체에서 나누는 둘째 사랑에는 긴장과 스트레스가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둘째 사랑은 하나님이 주시는 첫째 사랑의 깨어진 모습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런 어두움 없는 첫째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은 정말 기쁜 소식입니다. - 신경하, 「매일 아침 1분」(은행나무 )

Sharing Point
나폴레옹은 어릴 때부터 못생겼다고 어머니에게 종종 무시를 당했다고 합니다. 그는 늘 상대적으로 자기보다 잘생긴 형에 비해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공격적인 성향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그 상처는 다른 사람에 대한 공격성으로 나타나곤 합니다.

 

본문속으로
본문을 통해 발견되는 성경적 가르침을 이번 과의 주제와 연관해 나눠 보는 순서입니다. 세 번의 질문은 모두 해석 질문으로서, 그것을 읽고 해당 본문을 찾아 함께 답을 말해 보십시오.
1. 압살롬은 왕에게 상소하러 가는 백성의 마음을 어떻게 훔쳤나요?(1~6절) 그가 반역을 꾀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13~14장 참조)
압살롬은 성문 길 곁에 서서 왕에게 상소하러 나오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문제가 무엇이든지 그들이 옳다고 해 줍니다. 또한 그의 송사를 들을 사람을 왕이 세우지 않았다며 자신이 재판관이 되어 정의를 베풀고자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절하려 하면 그가 그들을 붙들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렇게 압살롬은 백성의 마음을 훔칩니다. 그는 과거 여동생 다말의 강간 사건 때문에 갖게 된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 그 이후 이어진 아버지와의 소원한 관계 등으로 인해 반역을 꾀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첫째 아들 암논이 죽은 이후 셋째 아들 압살롬은 반역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형을 죽인 다음부터 아버지의 사랑이 자기에게서 떠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가 다말과 암논의 문제를 법대로 공정하게 판단하지 않았기에 자신이 대신 정당한 보응을 시행했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가 그를 계속 외면하자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고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압살롬은 자신이 늘 의롭게 살아왔지만 손해만 보고 마땅히 자신의 몫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을 온당하게 누리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도 왕궁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었고 아버지인 왕을 만날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깊은 외로움과 비참함을 맛보아야 했을 것입니다. 이런 시간이 몇 년간 계속되었습니다. 한편 그는 어려서부터 잘생긴 외모 때문에 사람들에게 주목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관심과 사랑 속에서 살다가 한순간에 이 모든 것이 사라지자 극도의 분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원망과 복수심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악한 지혜를 발휘해 반역을 꿈꾸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 호위병을 세우고 성문 길 곁에 섰다가 백성의 마음을 훔쳤습니다. 이런 일이 무려 4년간 계속되자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은 압살롬에게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 내면의 상처가 해결되지 않은 채 시간이 흐를 때, 그것이 타인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요?
성경은 압살롬이 백성의 마음을 훔쳤다고 말합니다. 압살롬은 상처받고 억울한 사람들의 대변인이 되어서 그들을 극진하게 섬겨 주었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에게 목자의 심정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역시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갈급함을 채우기 위해 신앙생활에서 열심을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는 아무리 열심히 봉사를 하더라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보다는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참과 거짓이 드러나게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안겨 줄 뿐입니다. 목회자 역시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을 가로챌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열심을 내는 교회에서는 성도들이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온전하지 않은 마음으로 무엇엔가에 열심을 내고 있다면 그것이 해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2. 4년간 기회를 엿본 압살롬은 다윗에게 어떤 요청을 했나요?(7~9절) 반역을 성공시키기 위한 그의 계략은 무엇이었나요?(10~12절)
압살롬은 자기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이 있으니 헤브론에 가서 그 서원을 이룰 수 있게 해 달라고 다윗 왕에게 요청합니다. 다윗이 이를 허락하자 압살롬은 신하 2백 명을 데리고 헤브론으로 갑니다. 이때 압살롬은 정탐을 보내 자신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 전하게 합니다.
압살롬이 헤브론을 반역의 장소로 선택한 이유는 과거 헤브론이 이스라엘의 수도였고 그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예루살렘으로 천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헤브론 사람들은 원래 아낙 사람들이 살던 촌동네인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한 것 때문에 유다 지파와 다윗 왕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압살롬은 신하 2백 명을 헤브론으로 데려갔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가는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 신하들은 다윗 왕에 대한 반역인지도 모른 채 압살롬을 따라갔습니다. 압살롬은 그 신하들을 끌어들임으로써 두 가지 효과를 보려 했습니다. 첫째, 다윗은 신실한 신하들을 잃었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그 신하들은 더 이상 다윗 편에 서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압살롬이 왕이 되었다는 소문이 온 지파에 돌자 압살롬에게 마음이 기울어 있었던 백성은 압살롬 편에 서게 됩니다.

* 다윗의 잘못이 압살롬의 반역을 낳은 것을 볼 때, 부모는 자녀 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대개 부모는 다윗처럼 자녀에게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부모가 자녀를 믿어 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자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혹은 어떤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는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문제가 터진 다음에야 그 쓴 맛을 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압살롬이 다말의 강간 사건으로 인해서 크게 상처를 받았을 때 다윗이 그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문제를 공정하게 해결해 주었다면 문제가 이렇게까지 확산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문제를 덮는 데만 급급했고 그럼으로써 결국 형제간에 살인이 일어나고 압살롬이 소외되기 시작했으며 반역과 이스라엘의 내전으로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예고하신 심판대로 되었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문제가 있는데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덮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죄를 짓더라도 부모의 사랑은 변함없음을 확신시켜 주어야 합니다. 아무리 부족한 자녀라도 그를 사랑으로 품고 하나님 말씀으로 권면하며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만약 다윗이 압살롬을 포용하고 그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며 사랑과 공의로 대했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본문 이해를 위한 도우미
부모의 죄로 인해 자녀가 고통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에 맞는 것일까요? 에스겔서 14:12~20은 자기 죄로 자기가 죽고, 자기 의로 자기가 산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20:5~6은 아버지의 죄가 3, 4대까지 간다고 말씀합니다. 사실 이 두 말씀은 두 가지 다른 측면을 강조하는 것일 뿐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죄와 의는 유전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아버지의 죄를 자식들이 따라 짓게 되니, 그 자식의 죄는 부모의 죄를 본받은 자신의 죄가 되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영향력을 완전히 벗어나 독립적인 존재로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모의 복된 걸음은 자녀들에게 귀한 교훈과 본이 되어 자녀들도 복된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인도합니다. 부모는 자기 존재의 중요성과 역할을 인식하고 자녀에게 신앙의 본이 될 수 있도록 늘 조심해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의 죄는 그 속성과 내력이 연결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생활속으로
아래 질문들의 의도는 성경의 가르침을 일상에 적용하는데 도움을 주려는 것입니다. 질문들 밑의 칼럼은 토론을 진행하는데 추가적인 안목을 주기 위해 제공된 것입니다. 각 질문에 대한 생활 나눔을 마치고 참석자들 중에 한 사람에게 읽도록 해도 좋습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그를 방치했습니다. 소외감과 버림받은 좌절감은 압살롬의 마음에 상처가 되어 복수심과 분노를 낳았습니다. 자녀의 반항은 이해와 관심, 사랑을 바라는 왜곡된 표현입니다. 압살롬의 문제는 사실 아버지 다윗의 문제였습니다. 만약 문제가 깊어지기 전에 다윗이 압살롬과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면, 이렇게 엄청난 비극을 맞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자녀에게 문제가 생길 때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그 시간을 바르게 서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 노력이 있을 때, 자녀 또한 자연스럽게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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