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성경공부교재

18-02-05 13:25

18년 2월 18일 주일성경공부교재

동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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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임재의 자리에서 깨닫다      시편 73:15~28

 

인도자를 위한 예화

날 때부터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 몇 명이 동물원에 갔습니다. 그들이 코끼리 우리에 도달했을 때 인도하던 동물원 직원은 단순한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그들로 더 많은 경험을 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각각의 시각장애인들에게 제한된 시간 동안 코끼리를 만지게 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 손을 뻗어 코끼리의 꼬리를 움켜잡았습니다. “코끼리는 큰 밧줄과 같구나!” 두 번째 사람은 코끼리 다리를 만졌습니다. 그가 만졌을 때 이상하게도 큰 밧줄은 없었습니다. “아니요, 코끼리는 큰 통나무 또는 나무와 같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손을 내밀어 코끼리 귀 중 하나를 만졌습니다. 코끼리는 귀가 간지러워 팔랑거렸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아, 이것 봐, 코끼리는 큰 팬 같아”라고 외쳤습니다. 네 번째 남자는 조심스럽게 코끼리 코를 만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친구들, 코끼리는 거대한 뱀과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 사람은 완전히 혼란스러웠고, 앞으로 나아가 진리를 찾기를 희망하고 더듬는 중 상아를 만졌습니다. 그는 잠시 멈춰 “나는 코끼리의 본질이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검입니다.” 동물원 직원은 그저 미소만 짓고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이같이 시각장애인이 코끼리를 만지는 식으로 자신의 경험만으로 상황을 이해할 때가 많습니다. 특별히 어려운 일이 일어날 때 내가 한 경험만을 바탕으로 판단해 낙담하곤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그림이 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상황을 보게 해 줍니다. 
시각장애인이 코끼리 일부만 만지고 알 듯 나 또한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한다면, 앞으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요? 

본문 읽기시편
73:15~28을 함께 읽습니다.
배경 이해하기

시편 73~83편은 아삽의 시편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삽의 시’라는 표제가 붙은 12개 시편(50, 73~83편)은 다윗 시대 성가대 대장 아삽(대상 16:4~7)이나 그의 후손들에 의해 지어진 시편으로 봅니다. 아삽은 다윗 시대에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찬양을 하던 레위인 가운데 지도자였습니다. 73편은 모순된 세상의 불공평 문제로 믿음이 흔들렸던 시편 기자가 하나님의 계시로 회복되는 교훈적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크게 1~14절과 15~28절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부에서는 아삽의 신앙을 흔들리게 했던 불의한 현실들을 열거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하고 오만한 악인들이 이 세상 가운데 고통을 당하지 않고 형통하는 현실을 바라보며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믿음을 거의 잃어버릴 뻔합니다(2절). 그동안 정결한 마음으로 죄짓지 않고 살고자 한 자신의 노력이 허무하고 소용없는 것처럼 느껴져(13절) 마치 종일 얻어맞고 징벌을 받는 것 같다고 고백하기까지 합니다(14절). 시의 후반부(15~28절)에서는 시편 기자의 믿음의 회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순된 현실의 상황으로 믿음이 흔들렸던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불평불만 하는 죄를 짓지 않으려고 믿음의 씨름을 하며 예배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악인의 형통으로 흔들렸던 믿음은 예배의 자리에서 깨달음을 통해 회복되고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말씀 나누기
관찰과 묵상 
악인의 형통으로 인해 갈등하던 시편 기자의 고민이 해결된 때는 언제인가요? 그가 깨달은 진리는 무엇인가요?(16~20절)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악인들의 종말이 어떠한지 깨닫습니다. 즉, 악인들의 최종적인 운명이 갑자기, 놀랄 정도로 전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받는 현실에서 신앙적 갈등을 하던 시편 기자는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진리를 깨닫고 신앙의 방황을 멈추게 됩니다. 혼자서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던 문제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교제하는 곳에 나아갈 때 해결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의 자리는 우리의 혼동을 잠잠케 하고 인생의 풀리지 않는 문제를 해결합니다. 시편 기자가 깨달은 진리는 이 땅에서 번영하는 것처럼 보이는 악인들을 하나님이 결국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갑자기 황폐하게’ 되는 종말을 맞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미끄러운 곳’(18절)이란 제대로 서 있을 수 없는 위태로운 삶의 자리를 의미합니다. 히브리어 원문은 18절을 ‘참으로’(surely)라는 뜻의 ‘아크’라는 부사로 시작하는데, 이는 악인들이 형통해 보일지라도 그들의 결말이 멸망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적용과 나눔
신자인 나는 고난이 끊이지 않는데 주변의 불신자는 염려 없이 잘사는 경우에 느꼈던 고민과 응답에 관해 나누어 보세요.
 
‘악인의 번영과 의인의 고난’은 성도로 하여금 깊은 고민에 빠지게 합니다. 예를 들어, 평생을 믿음으로 헌신하며 영혼을 섬기던 선교사님 가정에 갑자기 재난이 닥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고 온갖 권모술수를 쓰는 사람이 사회에서 인정받고 승진하는 모습을 보면 믿음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이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렇듯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것들이 성경이 말하는 것과 다르다고 느껴질 때 우리 신앙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신앙이 흔들릴 때 자신의 경험과 지혜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시편 기자가 괴로워하며 스스로 풀 수 없었던 문제를 하나님 임재의 자리로 나아가 아뢸 때 진리의 빛으로 조명받아 해결되었던 것처럼, 우리 인생의 풀리지 않는 문제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만 해결됩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는 친밀한 교제의 장소로, 그분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관찰과 묵상 
갈등에 대한 답을 얻은 시편 기자는 자신에 대해 어떤 고백을 하나요? 그가 알게 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21~28절)
 
시편 기자는 양심이 찔렸고, 자신이 무지한 짐승과 같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을 붙드시고 영광으로 인도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주님만이 반석이요 영원한 분깃이시기에 주님만을 사모할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의 계시로 악인들의 비참한 종말을 깨닫게 된 후에야 시편 기자는 비로소 1~14절에서 고백했던 자신의 질투와 믿음의 방황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습니다. 그래서 심한 부끄러움 가운데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짐승 같았다고 고백합니다(22절). 깨달음은 은혜입니다. 시편 다른 곳에서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기록합니다(시 49:20 참조). 이런 믿음의 연단 과정 뒤에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주의 교훈으로 자신을 인도하시고 그 후에는 영광으로 영접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24절). 그런 확신 위에 비록 이 땅에서 고난을 당할지라도 하나님만이 피난처가 되시고, 마음을 견고하게 하는 반석이며, 영원한 분깃이라고 찬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25~26절). 악인은 이 땅에서 일시적으로 형통할 뿐이지만, 세상의 불의 가운데서도 믿음과 선을 잃지 않는 의인은 영원히 빼앗기지 않는 하늘의 분깃을 누립니다. 이 진리를 확신하는 순간, 시편 기자는 하나님만을 사모하고 가까이하는 것이 진정한 복이라고 선포하며, 하나님을 전파하려는 선교적 열정을 갖게 됩니다(28절). 

적용과 나눔
내 마음과 눈이 세상을 향할 때와 하나님을 향할 때, 무엇이 달라지나요? 하나님만 사모하는 이에게 주시는 은혜는 어떤 것일까요?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악한 자가 형통하고 의로운 자가 고통을 받는 모순된 상황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자칫 흔들리고 고민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믿는 자를 붙드시고 진리의 교훈으로 인도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때 하나님만이 나의 힘이요, 반석이시요, 나의 전부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눈이 세상을 향하게 되면 미끄러지고 쓰러지지만,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두면 주님이 흔들리는 마음까지도 붙잡아 주셔서 주님만이 우리의 상급임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25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하는 동안은, 나는 하늘에서든 땅에서든 다른 어떤 것도 바라지 아니하나이다.” 진실로 아름다운 신앙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도는 하나님 임재의 자리에 나아가 하나님을 사모하고 바라는 것을 최고 가치로 여겨야 합니다. 성도의 영원한 분깃과 보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통당하는 현실을 볼 때, 신실한 사람도 그 믿음이 흔들리곤 합니다. 때로 믿음을 지키는 것이 바보같이 느껴져 세상 사람들과 같이 되려는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악인들의 형통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전멸하고 맙니다. 참된 믿음은 영원의 관점으로 현재를 바라보게 합니다. 선한 믿음의 싸움을 하며 하나님 임재의 자리에 나아갈 때 하나님은 성도의 오른손을 붙들어 그 삶을 반석 위의 집처럼 견고하게 하십니다. 불공평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고 그분을 가까이하는 자는 복됩니다. 


리더는 오늘 나눈 말씀이 기도로 마무리되도록 인도합니다. 아래 기도 제목을 1개 혹은 2개 모두 사용하거나, 필요에 따라 더 추가해도 좋습니다.
- 이 세상에서 악인이 형통하는 것 때문에 실족하지 않도록, 도리어 하나님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감으로써 거짓과 신앙의 의심들이 무너지도록 
- 세상에서 보고 듣는 어떤 불공평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만을 가까이하고 사모하며 의지하도록

이렇게 구성원들과 한목소리로 기도한 후 ‘말씀으로 기도하기’를 따라 읽으며 마무리하고, 중보기도(함께 기도하기)로 들어갑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불공평한 상황으로 마음이 요동할 때 말씀으로 제 무지함을 깨우치소서. 주님의 심판 앞에서 악인과 선인의 결말이 어떠할지 생각하게 하시고, 주님을 신뢰하고 가까이함으로 영원한 복을 누리게 하소서. 
1. 부와 권력을 세습하는 관행이 끊어지고 부의 양극화 현상이 더 심해지지 않도록 간구하며, 정당한 수고의 대가를 인정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사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2. 2008년 인도 동부 오디샤주의 폭동으로 마을에서 내쫓긴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삶과 터전이 회복되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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