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성경공부교재

14-07-06 10:55

14년 7월 13일 둘째주 주일 성경학교 성경공부 교재입니다.

동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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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편견을 넘어서 마가복음 3:20~35

 

이야기속으로
아래 질문들은 이번 과의 주제에 대한 괄적인 나눔을 이끄는 것입니다. 이 질문들의 목적은 솔직한 방식으로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데 있습니다. 정답이 아닌 각자의 답을 나누고, 주제에 대해 생각이 열렸다고 판단되면 '본문 속으로' 넘어가십시오.
모태 신앙인이라지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채 살았다. 그러다 오랜 세월이 흘러서야 만난 예수님이 얼마나 좋았던지, 예수님과 예수님이 주신 생명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이렇게 전도와 말씀에 빠져 사는 나를 부모님은 걱정스럽게 보셨다. 동생에게 내가 귀신 들린 것 아니냐며 눈빛이 이상하다고 하셨다고도 한다. 심지어 내게 기독교에 너무 빠지지 말라고 엄포를 놓으셨다. 부모님의 말은 나를 좌절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때 나는 QT 나눔방을 통해 위로와 격려를 얻고 무릎을 다시 세울 수 있었다. 오늘 본문에서 ‘성령을 모독하는 것’, 곧 성령의 일을 악하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게 된다(29절). 또한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35절)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순종을 통해 한 형제, 자매, 가족으로 맺어진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많은 사람을 영원한 공동체로 인도하는 소망을 제게 주신 하나님, 주위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와 순종하는 마음 또한 주소서!”

* 나 자신 또는 내가 속한 공동체 사람들은 어떤 편견이 있나요?

인도자를 위한 예화
대전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승무원이 기차에 타고 있는 승객들의 표를 검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연신 혼잣말로 “아이고 큰일 났군, 큰일 났어”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이윽고 기차의 한 칸을 모두 검사하고 난 그 승무원은 승객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승객 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기차를 잘못 타셨습니다. 이 기차는 대전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가 아니라 대전에서 부산으로 가는 기차입니다. 모두 다음 역에서 내리셔서 갈아타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 기차는 분명 서울로 가는 기차였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기차를 잘못 탄 것은 승객이 아닌 그 승무원이었습니다. 승객 모두가 서울로 가는 기차표를 지니고 있다면 그 승무원은 ‘혹시 내가 기차를 잘못 탔나?’ 하고 생각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승무원은 자기가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나머지 이런 실수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편견이나 오해는 이렇게 다른 사람까지 힘들게 합니다.

Sharing Point
삶의 경험과 여러 가지 지식 때문에 자신 안에 견고한 편견과 오해의 영역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편견과 오해는 상황을 잘못 해석하게 만들기 때문에 치명적입니다. 공동체에 어려움을 주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고 각자가 가진 편견이나 오해는 무엇인지 말씀으로 자신의 모습을 점검해 보고 이를 나누어 봅니다.

 

본문속으로
본문을 통해 발견되는 성경적 가르침을 이번 과의 주제와 연관해 나눠 보는 순서입니다. 세 번의 질문은 모두 해석 질문으로서, 그것을 읽고 해당 본문을 찾아 함께 답을 말해 보십시오.
1. 예수님의 친족들은 왜 예수님을 찾아왔나요?(21절) 예루살렘에서 온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평가했나요?(22절)

예수님의 친족들은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들러 왔습니다.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바알세불에게 사로잡혔고 귀신의 왕에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수많은 치유와 이적을 보면서 사람들은 무척 혼란스러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침례 요한이 살아난 것이라고 말했고(마 14:1~2)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가 살아서 돌아온 것(마 16:14)이라고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사역은 어떤 식으로든 설명이 필요했고 사람들은 어떤 설명을 따를 것인지 선택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친족들은 예수님이 미쳤다고 하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요한복음 7:2~5에 의하면 예수님의 형제들 중에도 그분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저 목수로만 알고 있었고,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근거한 그릇된 확신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귀신을 내쫓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이 온전케 되는 것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능력 앞에 난처해진 서기관들 역시 이것을 그들의 지식 안에서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이 일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낭패를 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힘에 사로잡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설명이었지만 오해와 편견으로 만들어진 결론일 뿐입니다. 오해와 편견을 버리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구원자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 최근 무슨 일로 누구를 오해했나요? 내가 고집하는 생각이나 신념 중 다른 사람 의견도 듣고 참작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우리는 정보도 부족하고 정확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데도 상황에 떠밀려 눈앞에 있는 현상을 설명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설명에 만족하고 그것을 사실인 양 받아들입니다. 심지어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생각하도록 강요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오해는 잘못된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오해는 사람들에게 잘못된 생각을 갖게 합니다. 편견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잘못된 소문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런 소문과 소식에 진실과 진리가 담길 수 없습니다. 사랑이 담길 수 없습니다. 서로를 불신하게 하고 거부하게 하여 공동체를 분열시킵니다. 오해는 진실 앞에서 이해로 변화됩니다. 편견은 완전한 진리를 만날 때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로잡히게 됩니다. 진리의 말씀은 오해와 편견을 이해와 온전한 시각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체를 세워 가는 기초는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2. 예수님은 서기관의 주장에 대해 어떤 예로 반박하셨나요?(23~26절) ‘결박할 강한 자’와 ‘강탈하는 자’는 각각 누구를 가리키나요?(27절)

서기관의 주장에 대해 예수님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와 집이 설 수 없는 것처럼 사탄의 나라도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한다고 반박하셨습니다. ‘결박할 강한 자’는 사탄이고, 강한 자를 결박하고 그 집을 ‘강탈하는 자’는 귀신을 내쫓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의 말에 매우 논리적으로 반박하십니다. 예수님의 축사 사역은 서기관들이 설명한 것처럼 더 강한 귀신의 힘을 이용해 약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귀신들과 한편이었다가 분열을 일으키신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곧 예수님을 사탄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예수님은 나라든 집이든 분쟁이 일어나는 곳은 제대로 기능할 수 없고 지속될 수도 없다는 점을 지적하십니다. 또한 예수님이 행하시는 사역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권세 앞에 사탄이 굴복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강한 자로 군림하고 있던 사탄을 하나님의 권세로 결박하여 그들이 붙잡고 있던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시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내쫓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고 악한 영과 단절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곳에는 분쟁이 없습니다. 분열이 없습니다. 그곳에는 기쁨과 평강이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통해 귀신이 떠나가는 것은 사탄의 나라를 무너뜨리는 예수 이름의 권세를 드러낼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 요즘 우리 가정, 교회, 사회를 분열시키고 혼란에 빠뜨리는 문제는 무엇이며, 그 문제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함께 나누어 보세요.

예수님은 두 가지 중요한 공동체인 나라와 가정을 예로 드십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직접 세우신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가정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기 때문에 가정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가정이 바로 세워져야 나라도 바로 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가정이 너무 쉽게 깨지고 있습니다. 가족 안에서도 이해와 용납을 찾기 어렵습니다. 사회 안에도 갈등이 팽배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하나 됨과 관용은 표어로만 존재하는 듯 보입니다. 가정과 나라는 반드시 주 안에서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가정과 나라가 분열되는 것입니까? 가정과 나라라는 중요한 공동체 안에서 오해와 편견의 사슬로 우리를 붙잡고 있는 강한 자 때문입니다. 미처 인식하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지금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오해와 편견에 사로잡혀 분쟁과 분열을 조장하는 사탄에게 붙들려 있을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의 권세 있는 이름으로 우리를 붙들고 있는 사탄을 결박할 것인가의 싸움입니다. 이 싸움은 영적 전쟁이며,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강한 자 사탄을 예수님의 권세로 결박하는 것입니다.

본문 이해를 위한 도우미
29~30절에서 예수님은 용서받을 수 있는 죄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다는 사실은 성도들에게 두려움을 줄 뿐 아니라 성경 전체의 맥락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난해 구절에 대해 학자들은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곧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합니다. 혹은 성령의 사역이 곧 사람을 감동시키고 감화하셔서 구원받게 하시는 것인데 이를 부인하는 것은 회개할 기회 자체를 잃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다시 보면 용서받지 못하는 죄로 지적된 것이 곧 ‘예수님이 악한 귀신에 들렸다고 말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행동보다는 태도를 두고 하신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하는 어떤 특정 행동이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 앞에서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우리의 구원자 되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더 신뢰하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 성령께서 하시는 일도 사탄이 하는 일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그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막아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받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성령에 힘입어 하신 일이므로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그 일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메세지속으로
아래 질문들의 의도는 성경의 가르침을 일상에 적용하는데 도움을 주려는 것입니다. 질문들 밑의 칼럼은 토론을 진행하는데 추가적인 안목을 주기 위해 제공된 것입니다. 각 질문에 대한 생활 나눔을 마치고 참석자들 중에 한 사람에게 읽도록 해도 좋습니다.
예수님은 주님과 주님의 사역에 대해 오해와 편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비유를 들어 설명하십니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따라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오해와 편견에 쉽게 빠집니다. 오해와 편견은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올바로 보지 못하게 하고, 그분과 하나 되지 못하게 하며, 성령의 사역과 공동체의 하나 됨을 방해합니다. 사탄은 우리 약점을 미끼로 우리를 붙들고 있는 강한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있는 이름으로 그 악한 영을 결박하십시오. 완전한 진리인 주님 말씀을 삶의 기초로 삼고 붙드십시오.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기
- 공동체의 하나 됨을 위해 주님 말씀 앞에 저희 생각을 내려놓기 원합니다. 저희 안의 오해가 이해로, 편견이 포용으로 변하게 하소서.
- 가정과 교회, 일터와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영적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눈에 보이는 현상 뒤에 있는 악한 영을 대적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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