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성경공부교재

14-07-28 10:16

8월 3일 첫째주 주일 성경학교 성경공부 교재입니다.

동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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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자 하는 사람과 섬기는 사람 마가복음 10:32~45

 

이야기속으로
아래 질문들은 이번 과의 주제에 대한 괄적인 나눔을 이끄는 것입니다. 이 질문들의 목적은 솔직한 방식으로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데 있습니다. 정답이 아닌 각자의 답을 나누고, 주제에 대해 생각이 열렸다고 판단되면 '본문 속으로' 넘어가십시오.
“저는 교회학교에서 교사로, 기독교 대안 학교에서 교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주변 성도들이 섬긴다는 말을 자주 쓰다 보니 언젠가부터 나도 자연스레 그 말을 사용해 왔다.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님이 섬기기 위해 오셨으며, 그 섬김이란 바로 나를 위해, 모든 사람을 위해 목숨을 내주시는 것이었음을 보게 된다. 지난 3월, 중학교 2학년을 담임하면서 “사랑으로 섬기겠습니다.”라고 공언했고 그렇게 기도했다. 그러나 북한도 남한의 중2 학생들이 무서워 쳐들어오지 못한다고 했던가. 학생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한창 사춘기인 중2 아이들은 중1 때의 순진함도, 중3 때의 어설픈 성숙함도 없다. 제멋대로 날뛰는 야생마를 길들여야 하는 사명이 내게 주어진 것이다. 주님께 지혜를 구하고 동료 교사들에게 자문을 구해 봐도 속 시원한 해결책이 없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 QT를 통해 내게 말씀하신다. “종이 되어 섬겨라. 목숨을 내주어라.” 그것만이 아이들의 마음을 얻는 길이자, 급훈처럼 아이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참된 예배자’로 세워지도록 돕는 길일 것이다.

* 다른 사람을 섬긴다고 하면서 그 속에 다른 마음이 있었다면 언제인지 나누어 보세요. 

인도자를 위한 예화
헨리 나우웬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요 하버드대학교 교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교수직을 사임하고 메사추세츠 주에 있는 장애인 공동체 데이 브레이크(Day Break)에 봉사자로 들어갔다. 여기서 그가 한 일은 강의나 상담이 아니라, 가장 단순하고 반복적인 육체적 돌봄 사역이었다. 장애인들의 식사와 세수를 돕고 옷을 갈아입히는 등의 일이었다. 헨리 나우웬은 어려서부터 천재라는 말을 들었던, 하버드대학교 교수가 된 후 저술한 책 20여 권이 모두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명망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이 물었다. “왜 그동안 쌓은 학식과 명예와 보직을 버리려 합니까? 차라리 당신의 지식으로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헨리 나우웬은 『예수님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Jesus)라는 책을 통해 대답했다. 그 책의 요지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알려면 내리막길을 체험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주님이 말씀하시고 몸소 행하셨던 복음의 교훈은 내리막길에서만 체험된다는 것이며, ‘꼭대기를 향해 오르막길로만 전진하니 예수님은 안 보이더라’는 것이었다.

Sharing Point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겪을 수난과 부활에 대해 세 번째로 예고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자리다툼에 몰두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제자들에게 섬김과 희생의 삶을 살 것을 말씀하십니다.

 

본문속으로
본문을 통해 발견되는 성경적 가르침을 이번 과의 주제와 연관해 나눠 보는 순서입니다. 세 번의 질문은 모두 해석 질문으로서, 그것을 읽고 해당 본문을 찾아 함께 답을 말해 보십시오.
1.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길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무엇인가요?(32~34절)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고, 그들이 인자를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능욕하고 죽일 것이나 인자는 3일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라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제자들에게 자신의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세 번째 수난 예고입니다. 이 예고는 앞선 두 번의 예고(8:31; 9:31)보다 훨씬 구체적입니다. 즉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이 그 일을 집행할 것이며 예수님이 능욕과 채찍질을 당하고 결국 죽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까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거듭해서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이야말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사역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향해 자발적으로 나아가신 것은 인류의 죄를 대속함으로 사망에 매여 있는 자들을 풀어주고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영광의 부활에 이르기 위함이었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자신이 어떤 고난을 당할지 잘 알고 계셨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이셨기에 예루살렘을 향해 당당하게 나아가셨습니다.

* 주님은 사명을 완수하고자 십자가와 부활을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내 삶은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어떤 방향 전환이 필요한가요?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그들은 ‘놀라고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나 행동이 평범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그분이 앞서 나아가시는 것을 보면서 무엇인가 심각하고 특별한 일이 그분의 마음속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행동이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한 경우에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믿음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다 이해하지 못할 때에라도 예수님은 그분을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십자가 수난은 우연에 의한 것도 아니고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그들 뜻대로 행한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태초부터 하나님이 예정하신 섭리에 기초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수난을 감당하심으로 우리를 죄의 사슬에서 해방하시고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 5:14). 그리스도인도 죽음과 같은 고난을 앞둔 두려운 상황일지라도 담대하게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비록 힘들고 어렵겠지만 능히 감당하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할 때 결국에는 부활의 기쁨과 새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2. 예수님은 다가올 수난을 예고하셨으나 제자들은 무엇에 몰두하나요?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무슨 말씀을 하시나요?(35~45절)
제자들은 누가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섬김의 도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자신은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음을 말씀하십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나아가 높은 지위를 요구합니다. 이들이 이렇게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들의 어머니 살로메가 마리아의 자매였으므로(참조, 막 15:40; 요 19:25) 그들이 예수님과 사촌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에 대해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내가 겪어야 할 고난을 너희가 감당할 수 있느냐? 내 고난의 잔을 마시고 고난의 례를 받을 수 있느냐?” 예수님이 말씀하신 ‘잔’은 시련, 고통, 슬픔, 상심, 눈물을 마시는 것을 상징합니다. 고난의 례는 거부, 조롱, 박해와 같은 외적 고통을 말합니다. 나중에 야고보는 헤롯에 의해 순교의 잔을 마신 최초의 사도가 되었고, 요한도 예수님과 다른 사도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밧모 섬으로 추방되어 유배 생활을 하게 됩니다. 한편,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분히 여긴 열 제자에게 주님은 참된 제자도를 말씀하십니다. 즉 섬기는 자가 큰 자이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으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을 구원하고 섬기기 위해 대속물로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 으뜸이 되는 것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추구했나요? 내가 예수님께 배워야 할 섬김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사람들이 은밀히 원하는 것은 높은 지위와 권세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그들의 어머니와 함께 예수님께 나아가 예수님의 좌우편 자리를 구합니다(마 20:20~21).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이 그들을 특별한 제자로 여기신다고 생각했고(9:2), 그래서 최고 지위에 합당하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권력자 옆에 가까이 앉고자 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추구하는 욕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두 제자의 요구에 대해 오히려 그들이 치러야 할 대가를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이 감당해야 할 고난과 고통과 핍박을 함께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일을 들은 제자들 사이에서는 분노와 시기와 갈등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를 아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섬기는 자가 되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들을 위한 ‘희생 제물’로 주라는 것입니다. 

본문 이해를 위한 도우미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32절). 이들이 놀라고 두려워한 이유는 33절의 수난 예고와 관련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선두에 나서서 걸어가는 예수님의 모습에는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단호함과 결단력이 있었고,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앞으로 닥쳐올 사건에 대한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37절). 평행 본문에서 마태는 ‘주의 나라’(마 20:21)라고 표현하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메시아 왕국의 영광스러운 도래로 이해한 듯합니다. 즉 예수님이 이 땅에서 왕권을 잡으시면 제2, 제3의 권력자가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례를 받으려니와”(39절). 메시아 왕국에서 영광을 얻는 방법은 권좌를 추구하는 것에 있지 않고 도리어 고난과 죽음을 통해 권력을 포기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잔’과 ‘례’라는 말로 설명하십니다. ‘잔’은 대부분 고난과 죽음을 상징하는 대표적 단어이며 여기에서는 앞으로 있을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상징합니다. ‘례’는 박해와 재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자연적 홍수를 가리키는 구약적 이해에서 비롯된 말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인자’라는 메시아적 칭호를 자신에게 사용하십니다(참조, 단 7:13).

 

생활속으로
아래 질문들의 의도는 성경의 가르침을 일상에 적용하는데 도움을 주려는 것입니다. 질문들 밑의 칼럼은 토론을 진행하는데 추가적인 안목을 주기 위해 제공된 것입니다. 각 질문에 대한 생활 나눔을 마치고 참석자들 중에 한 사람에게 읽도록 해도 좋습니다.
십자가가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제자들은 근심하며 두려워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자신의 사명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숭고한 각오와 행함으로 우리는 구원과 치유를 얻었습니다. 반면 자기 욕망에 따라 서로 다투고 시기하는 제자들의 모습은 주님의 모습과 대조됩니다. 인간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주님을 찾습니다. 그리스도인마저 세상 집권자나 다를 바 없이, 남을 섬기기보다는 큰 자, 군림하는 자가 되려 합니다. 연약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자신을 고난의 희생 제물로 드리신 그리스도처럼 우리도 자기를 부인하고 낮추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함께 기도하기
- 공동체 안에서 제 잇속만 챙기려 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저희 위해 목숨까지 내어 주신 주님을 본받아 몸으로, 삶으로 지체들을 섬기게 하소서.
- 하나님이 주신 사명대로 고난과 부활의 길을 걸으신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맡은 사명을 기쁘게 감당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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