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성경공부교재

14-02-24 14:17

3월 2일 첫째주 주일 성경학교 성경공부 교재입니다.

동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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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여호와 | 사무엘상 14:1~23


이야기속으로


이번 학기에 전도폭발훈련 3단계 훈련자로 섬기게 되었다. 순장 사역과 문서 사역 등으로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야 하는 부담과 전도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누른다. 그러나 하나님이 오늘 말씀을 통해 내 마음을 새롭게 하신다. 요나단은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시는 것을 보기 위해, 할례받지 않은 자들에게 건너간다. 내가 전도 현장에 나가는 것 또한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시는 것을 보기 위함임을 깨닫는다. 요나단과 무기 든 소년이 한 팀이 되어 블레셋으로 가듯이(7절) 하나님이 영혼 구원에 대한 열망을 지닌 훈련생들과 나를 한 조로, 한마음으로 묶어 주시리라 기대한다. 10절에서 요나단은 블레셋이 올라오라고 말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신의 손에 넘기셨음을 확신하겠다고 선포한다. 나도 전도 대상자가 2개의 진단 질문에 확신에 찬 대답을 못 하면, 하나님이 내게 붙이신 영혼이라 믿고 열정과 확신을 가지고 그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앞에 엎드러진 것처럼(13절) 많은 영혼이 하나님 앞에 엎드러지는 은혜를 경험하는 훈련이 되기를 소망한다


* 내 삶에 하나님이 개입하신다고 느껴질 때는 언제인가요?    



인도자를 위한 예화
아내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미션스쿨을 다녔으나 대학에 입학하고부터 자연스럽게 교회와 멀어지더니 불신자인 나와 결혼했습니다. 신혼 때 살던 집의 주인아주머니는 교회 집사님이었습니다. 그분은 아내를 불러 차를 한 잔 대접하시더니 “힘들지? 애는 어떻게 키워? 기저귀는 이렇게 가는 거야. 김치는 이런 젓갈을 사용하는 거야” 하며 친정어머니처럼 챙겨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에게 복음을 전했고 아내는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를 전도한 주인아주머니는 성격이 얼마나 내성적인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이 용기를 내서 아내에게 “새댁, 혹시 예수 믿나?”라고 물었고, 아내를 전도하더니 나까지 회심시켜 온 세상을 다니는 전도자로 만들었습니다. 내가 말씀을 선포했을 때 열매를 맺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지만 선포하는 만큼 힘을 얻는 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말씀에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의 이름에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능력 있는 이름을 선포하십시오. 그러면 내 삶이 새로워집니다. - 김기동, 「MR. 고구마의 전도행전」(두란노)


Sharing Point
우리 자신의 성격, 형편, 능력이 어떠하든지 간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에 순종하며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에 개입하시고 그분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속으로 

1. 블레셋과 마주한 이스라엘은 어떤 상황인가요?(2절; 13:19~23 참조) 요나단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블레셋에게 나아갔나요?(6~10절) 블레셋 군대에 맞서는 사울의 군대는 6백 명밖에 남지 않았고 사울과 요나단 외에는 변변한 무기조차 없었습니다. 요나단은 여호와의 구원이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음을 믿고 자신의 병기를 든 자와 함께 블레셋 군대로 건너가서 싸울 각오를 합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블레셋을 그들 손에 넘기셨다고 확신합니다.

병거가 3만, 마병이 6천 명인 블레셋 군대가 집결하자 사울은 이스라엘 사람 3천 명을 징집했지만 경솔한 번제 제사로 인해 모두 흩어져 6백 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당시 블레셋은 철제 무기로 무장했지만 이스라엘에는 사울과 요나단 외에는 무기를 가진 군사가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블레셋의 전력에 비하면 이스라엘은 절망적인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나단의 행동은 사무엘상 13장에서 보인 사울의 비신앙적 태도나 행동과 대비됩니다. 요나단은 블레셋을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라고 일컬으며 이 전쟁이 신앙과 직결된 것임을 선언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6절)라고 고백하며 이 전쟁의 승리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선언한 그는 여호와의 전쟁이 현실적인 상황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모할 만큼 담대한 요나단의 생각과 행동은 오늘날 신자와 교회가 세상에 대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가르쳐 줍니다
.



* 내 형편이 초라하고 상황이 열악하다고 느껴 낙심한 적이 있다면, 요나단의 고백을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나누어 보세요.

블레셋의 3만 6천 명 군사와 이스라엘의 6백 명 군사는 압도적인 차이입니다. 철제 무기로 무장한 블레셋에 비해 아무 무기도 없는 이스라엘은 누가 생각해도 전의를 상실할 만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요나단은 병기 든 자와 함께 블레셋 진영을 공격하기로 계획을 세웁니다. 무모해 보이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믿음으로 보는 세계가 어떠한지를 보여 주는 의미 있는 사건입니다. 우리도 현재 맞서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요나단이 블레셋을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우리가 싸울 대상은 육체가 아니라 공중 권세 잡은 자들의 견고한 진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신다”라는 생각은 승리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를 밝혀 줍니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않는다”라는 요나단의 말은 지금의 현실이 영적 전쟁의 상황이라고 확신한다면 하나님의 구원은 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을 요나단의 영적 안목에 따라 다시 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2. 요나단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를 거두었나요?(13~15, 20절) 반면, 사울은 이때 어떤 태도를 취했나요?(18~19절)요나단과 병기 든 자가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올라가니 그들이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졌습니다. 들에 있는 진영과 모든 백성이 공포에 떨었으며, 부대와 노략꾼들도 떨고, 땅도 진동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각각 칼로 자기의 동무들을 치므로 큰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사울은 하나님의 궤를 가져다가 하나님의 뜻을 물으려 했으나 블레셋 진영에서 소동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중단합니다.

요나단과 병기 든 자는 여호와께서 주시는 표징을 신호로 약속하고 그 표징이 나타나자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군인들은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졌고 병기 든 자도 요나단을 따라가며 그들을 죽였습니다. 이때 들에 있는 진영과 모든 백성이 공포에 떨었고 부대와 노략꾼들도 공포로 떨 정도로 땅이 진동하는 큰 떨림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떨림’은 히브리 원어로 ‘헤르다트 엘로힘’이어서 ‘하나님의 떨림’이라고 직역할 수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각각 칼로 스스로 치면서 혼란이 일어났고, 전에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했던 히브리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합류하고, 에브라임 산지에 숨었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도주하는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해서 이스라엘은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그때 사울은 아히야 제사장에게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게 하는데 여기서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의 에봇’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시 하나님의 언약궤는 기럇여아림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물으려다가 상황이 급변하고 이스라엘이 승기를 잡은 것처럼 보이자 더 이상 하나님께 묻지 않습니다.

* 하나님의 뜻을 묻고 따라서 승리한 일 또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다가 결국 내 판단대로 한 일이 있다면 나누어 보세요. 요나단과 병기 든 자가 특별한 신호를 여호와의 표징으로 삼았던 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기보다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적어도 그들이 전쟁을 시작할 동기를 품고 시기를 정하는 데 있어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위를 따르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이 나타나는데 요나단이 올라갈 때 그 앞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엎드러지고 들의 진영에 지진과 같은 큰 떨림이 일어났으며 블레셋 진영의 사람들끼리 서로 칼로 치며 자멸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일은 기드온이 미디안과 싸우려 할 때 있었던 일과 유사합니다. 지금도 이와 같은 하나님의 개입과 승리가 우리의 삶에 나타날 수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물리적이고 현실적인 표적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기도를 통해 영적인 대적이 우리 앞에서 넘어지고 어둠의 세력들이 자멸하는 승리가 지금도 일어날 것입니다. 사울은 늦게나마 하나님의 에봇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물으려 하다가 블레셋 진영에 큰 혼돈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를 철회합니다. 이로 보아 그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이해를 위한 도우미
블레셋은 함 계통의 가슬루힘 자손으로(창 10:14) 지중해 북쪽 갑돌 지역에서 애굽 지역으로 이동했다가 람세스 3세에게 패하여 현재 팔레스타인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지중해 남쪽에 침입해서 정착한 해양 민족을 일컫습니다(렘 47:4; 암 9:7). 출애굽 당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과 전쟁할 경우 두려움 때문에 애굽으로 돌아갈 것을 우려하셔서 광야 길로 우회하게 하셨습니다(출 13:17). 사사 시대 말기 엘리 제사장 때 블레셋에게 언약궤를 빼앗기기도 했으나(4:11),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다시 되찾게 하셨습니다. 사울과 요나단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농기구를 만들 때 블레셋 사람들을 찾아가야 할 정도로 블레셋은 철기 문화에 있어서 앞서 있었습니다(13:19~22). 사울과 다윗 왕은 블레셋과 많은 전쟁을 했으나 블레셋 본토는 정복하지 못했고 솔로몬 왕 때에야 비로소 블레셋을 다스렸습니다(왕상 4:21). 다윗 왕 이후 블레셋은 그 세력이 점차 약화되어 이사야(사 14:28~32), 예레미야(렘 47장), 스바냐(습 2:4~7), 에스겔(겔 25:15~17), 스가랴(슥 9:5~8)의 예언대로 바벨론과 헬라 제국에 의해 함락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메세지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요나단의 모습은 오늘날 이성과 상식, 문화와 제도 안에 갇힌 성도들에게 큰 도전과 소망이 됩니다. 먼저 우리가 싸우는 대상이 누구인지, 이 싸움의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전쟁을 위한 전쟁이 아닌 구원을 위한 전쟁에 임할 수 있습니다. 현재 상황이 하나님의 구원을 제한할 수 없다는 확실한 신앙 고백은 놀라운 승리의 삶으로 이끌 것입니다. ‘큰 떨림’과 같은 하나님의 개입과 도움은 지금도 계속해서 나타나는 믿음의 실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궤를 가져온 사울처럼, 신앙이 있어 보이나 결국 상황에 따라 결정하는 불신에서 떠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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