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성경공부교재

14-09-21 15:50

9월 28일 주일성경공부교재

동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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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의 결심 에스라 7:1~10


이야기속으로
아래 질문들은 이번 과의 주제에 대한 괄적인 나눔을 이끄는 것입니다. 이 질문들의 목적은 솔직한 방식으로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데 있습니다. 정답이 아닌 각자의 답을 나누고, 주제에 대해 생각이 열렸다고 판단되면 '본문 속으로' 넘어가십시오.
에스라 집안은 선조의 믿음이 후대에 아름답게 전수되었다. 대제사장 아론의 16대손인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 7년, 예루살렘에 돌아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10절) 결심한다. 나는 믿음의 2대손이지만, 주일 성수 외에 가정에서 신앙 교육을 받은 기억이 거의 없다. 하지만 엄마가 되니 기독교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하게 되어, 저녁마다 자녀와 QT를 나누고 있다. 또 교회학교 아이들에게 말씀 묵상하기를 가르치겠다는 비전을 품고, 내가 맡은 ‘셀’(구역) 아이들에게 먼저 QT를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주일 공과 시간은 왜 그리 짧은지, 아이들은 또 왜 그리 바쁜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오늘 에스라의 결단을 보면서, 생각만 하던 일을 실천에 옮기려 한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 QT 나눔을 셀 아이들과 SNS로 나누고, 그중 한 가지를 주보에 실으려고 한다. 다음 세대가 QT를 통해 말씀 보는 눈이 열리고 하나님을 깊이 만나길 기도한다.

* 말씀을 배우거나 나누는 소그룹이 왜 필요한지 나누어 보세요.

인도자를 위한 예화
토라는 엄격하게 말하면 모세 오경을 말합니다. 토라는 사람 손이 직접 닿지 않도록 취급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우선 토라를 꺼내어 읽을 때에는 토라손(토라 포인터)을 이용합니다. 사람의 팔처럼 만들어진 토라손은 회당에서 토라를 읽을 때 여러 사람에게 현재 읽고 있는 부분을 알려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토라에 때를 묻히지 않게 합니다. 만일 토라 두루마리를 땅에 떨어뜨리거나 무심코 땅바닥에 놓은 사람은 금식을 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토라를 인격적으로 대우합니다. 만일 회당에 불이 났을 경우에는 사람을 다 구한 뒤에 제일 먼저 토라를 구해야 하고, 토라 두루마리가 낡거나 못쓰게 되어 폐기해야 할 때는 사람처럼 무덤에 묻습니다.

Sharing Point
하나님 말씀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서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말씀을 경외하는 것일까요? 유대인들처럼 성경책 자체를 소중히 다루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책이 닳도록 읽고 또 읽어서 그 말씀이 우리 마음에 새겨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에 대한 진정한 경외심입니다.
본문속으로
본문을 통해 발견되는 성경적 가르침을 이번 과의 주제와 연관해 나눠 보는 순서입니다. 세 번의 질문은 모두 해석 질문으로서, 그것을 읽고 해당 본문을 찾아 함께 답을 말해 보십시오.
1. 1절에 나온 ‘이 일’은 무엇을 가리키나요?(6:13~22) 에스라는 특히 어느 가문에 속한, 어떤 사람인가요?(5~6절)

‘이 일’이란 무너졌던 예루살렘 성전이 완공된 것을 말합니다. 에스라는 다윗 시대 제사장이었던 사독의 5대손이요, 아론의 16대손입니다. 그는 율법에 익숙한 학자였으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었기에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을 수 있었습니다.

본문은 아닥사스다 왕(BC 464~423년)이 왕위에 오른 지 7년째인 BC 458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는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고레스 왕에 의해 처음 고국으로 돌아간 해로부터 약 80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그 사이 적들의 방해로 중단되었던 예루살렘 성전도 고레스 왕의 조서와 스룹바벨의 리더십에 힘입어 완공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에스라가 바벨론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였습니다. 그는 바벨론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론의 가문에 속한 자로서 바벨론의 선진 문명에 기죽지 않고 말씀 연구에 힘을 쏟아 율법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특별한 도우심으로 아닥사스다 왕에게 은총을 받고 있었습니다. 아닥사스다는 당시 고대 중동의 패권을 장악한 바사의 제왕이었습니다. 그는 에스라가 요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허락했는데, 그것은 에스라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 오늘날 성도가 에스라처럼 이 세상에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어떤 점을 배워야 할까요?

당시 제사장이라고 해서 모두 율법에 정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율법을 잘 모르는 제사장도 많았고, 율법을 알더라도 지키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 에스라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지켜야 할 모세 율법에 익숙한 성경학자요, 율법 교사였습니다. ‘익숙하다’는 말은 ‘정통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는 율법을 공부하고 그에 순종함으로써 그 의미를 체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바벨론 학문도 공부했겠지만,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의 율법을 중요시하고 마침내 그 율법에 정통한 학자가 되었습니다. 아마 여기에는 그가 아론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이 한몫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이 지식의 근본임을 확신했습니다. 말씀에 대한 이런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바사의 선진 문화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말씀을 연구하는 일에 매진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무슨 부탁을 해도 될 만큼 그에게 큰 신임을 얻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도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그에 순종하는 것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의 풍조를 따라가도 성공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말씀을 연구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고리타분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절대적인 방법입니다.

2. 에스라는 언제 예루살렘에 돌아왔으며, 동행한 사람은 누구인가요?(7~9절) 본토로 돌아온 에스라는 어떤 결심을 했나요?(10절)

아닥사스다 왕 7년, 이스라엘 백성 중 일부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 가운데 일부가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습니다. 에스라는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지켰으며 이스라엘에게 율례와 규례를 가르치기로 결심했습니다.

왕에게 신임 받고 있었지만 에스라는 자신의 성공을 위한 정치적 입지를 마련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왕의 곁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그는 고국으로 귀환하기를 원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출발합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여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노략하려는 대적들이 매복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스라는 하나님께 평탄한 길을 주시도록 금식기도하면서 이 모든 일을 감당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그들 위에 함께하셔서 그들은 4개월 만에 고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오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여호와의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성전은 이미 완공된 상태였지만 백성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 있었고 형식적 예배만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변 이방인들의 영향으로 우상 숭배의 기미가 보이고 있었고 이방인들과 통혼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에스라는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애통해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가르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 공동체 안에 있는 자녀와 다음 세대가 세상 풍조에 휩쓸리지 않는 내면의 성전을 견고히 세우도록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스룹바벨의 지도력으로 예루살렘에서 형식적인 예배는 회복되었지만 내면의 예배, 삶 속에서의 예배, 진정한 예배는 아직 회복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이제 막 태어난 아기처럼 미숙하고 연약했습니다. 여전히 우상을 숭배할 기미가 보였고, 세상 풍조를 좇아 이방인들과 결혼하는 사람들까지 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가르쳐야 하는 수고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고 백성에게 가르침으로써 내면의 성전을 짓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녀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시대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믿음의 중심을 지키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합니다(히 4:12). 그리하여 우리의 존재 자체를 변화시키고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합니다. 그제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세상에서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본문 이해를 위한 도우미
이스라엘은 느부갓네살에 의해 4차례에 걸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BC 605년에는 다니엘과 그 친구들과 왕족들이, BC 597년에는 여호야긴 왕과 관리 1만 명과 왕자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왕하 24:14). BC 586년에 예루살렘 성벽이 헐리고 포로 832명과 시드기야 왕이 끌려갔으며, BC 581년에는 포로 745명이 끌려갔습니다(렘 52:28~30). 이때 활동한 선지자는 예레미아, 에스겔, 다니엘입니다. 바벨론에 머물면서 유대인들의 사상과 예배 방식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포로 시대에는 성전에 갈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시지 않고 어디든지 계신다는 사상이 발전했습니다. 또한 지금의 고난은 조상의 잘못 때문만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벨론이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긴 했으나 예루살렘에서와 같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수는 없었기 때문에 안식일에 회당을 중심으로 모여서 율법을 낭독하고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귀환한 느헤미야, 에스라 등에 의해서 율법이 정리되면서 유대교가 성립되었습니다.
생활속으로
아래 질문들의 의도는 성경의 가르침을 일상에 적용하는데 도움을 주려는 것입니다. 질문들 밑의 칼럼은 토론을 진행하는데 추가적인 안목을 주기 위해 제공된 것입니다. 각 질문에 대한 생활 나눔을 마치고 참석자들 중에 한 사람에게 읽도록 해도 좋습니다.
에스라는 대제사장 가문 출신이지만 바벨론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그곳에서 출세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신앙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탁월한 식견을 갖춘 학자가 되었습니다. 아마 어려서부터 늘 말씀을 가까이하도록 부모로부터 교육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는 당대 최고 권력자인 바사 왕에게 총애를 받는 엘리트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로 결정하고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기로 결심합니다. 말씀을 따르는 삶은 세상에서 바라볼 때는 고리타분해 보일 수 있지만, 결국 생명으로 향하는 삶입니다.

함께 기도하기
- 세상의 명예와 성공을 좇는 삶이 아니라, 에스라처럼 어느 곳에서든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을 가지고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게 하소서.
- 세상 풍조를 거슬러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는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자녀와 다음 세대에게 힘써 말씀을 가르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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