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성경공부교재

14-10-06 12:01

10월 12일 주일성경공부교재

동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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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시각으로 모순된 현실 바라보기 전도서 4:1~16


이야기속으로
아래 질문들은 이번 과의 주제에 대한 괄적인 나눔을 이끄는 것입니다. 이 질문들의 목적은 솔직한 방식으로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데 있습니다. 정답이 아닌 각자의 답을 나누고, 주제에 대해 생각이 열렸다고 판단되면 '본문 속으로' 넘어가십시오.
본문을 읽으니 예수님을 만나기 전, ‘비포(Before, 이전)의 삶’이 생각난다. 말씀대로 모든 수고에 끝이 없고, 눈은 무엇으로도 족하지 않았던(8절) 시절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늘 새것, 더 나은 것에서 나를 찾고자 했고, 이를 위해 수고했다. 그러나 이러한 수고의 결론은 ‘해 아래에서 헛된 것’(7절)일 뿐이었다. 당시 내 인생은 목적을 상실한 채 ‘왜 사나?’라며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힘든 시기였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애프터(After, 이후)의 삶’을 열어 주신 분이 계신다.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난 후로 나는 허무한 상태에 머무를 수 없었다. 말씀을 통해 생명의 기운이 나를 뚫고 들어와 매일 믿음이라는 기적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생명이 움직일 때마다 나는 받은 은혜를 힘차게 얘기했고, 내 삶은 점점 말씀 안에서 자유로워졌다. 주님은 이런 ‘애프터의 삶’을 사는 지금 나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다고 새롭게 결론지어 주신다(고전 15:58). 지금이 좋다. 예수님 때문에 찾은 아름다운 인생길을 기쁘게 찬양하며 갈 수 있어 좋다.

* 모순된 현실의 모습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인도자를 위한 예화
중국 국가주석이었던 마오쩌뚱(1893~1976년)은 전국을 철도로 다 연결했습니다. 그리고 만다린어로 언어까지 통일했습니다. 중국에는 한족과 55개 소수 민족이 있지만, 이 표준어 하나만 공부하면 쉽게 의사소통이 됩니다. 어떻게 보면 중국에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일등 공신은 마오쩌뚱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가 교통과 언어 문제를 해결해 주어 복음 전파가 수월해졌기 때문입니다. 덩샤오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개혁 개방 정책 때문에 복음 전파의 길이 많이 열렸습니다. 한국 교회 부흥의 일등 공신도 어쩌면 김일성일지 모릅니다. 원래 평양을 중심으로 한 장로교와 인천을 중심으로 한 감리교가 한국의 기독교였는데, 김일성이 한국전쟁을 일으키며 이북에 있던 성도들이 다 흩어져 버렸습니다. 성도들이 전국에 골고루 흩어졌습니다. 울릉도에도 성도들이 들어갔고, 제주도에서 가장 큰 교회도 그때 생긴 영락교회입니다.

Sharing Point
그리스도인들은 모순으로 가득 찬 자신의 삶과 세상을 볼 때 그 내면을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누구이며, 세상은 어떤 곳인지, 오늘의 이 사건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하고 사람들의 삶도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모순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은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을 돌려 대는 것과 같은 또 다른 모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삶입니다.


본문속으로
본문을 통해 발견되는 성경적 가르침을 이번 과의 주제와 연관해 나눠 보는 순서입니다. 세 번의 질문은 모두 해석 질문으로서, 그것을 읽고 해당 본문을 찾아 함께 답을 말해 보십시오.
1. 전도자는 학대와 악행이 널리 퍼져 있는 현실을 보고 무엇이라 하나요?(1~3절) 모든 수고와 재주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하나요?(4~6절)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고, 학대받는 자는 눈물을 흘리지만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자보다 죽은 자가, 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않은 자가 더 복되다고 전도자는 말합니다. 또한 수고하는 사람들과 재주 있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인생의 헛됨을 묵상하면서, 전도자는 학대받지만 위로받지 못하는, 곧 학대라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지만 탄식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해답이 없는 인생을 보며 모두 다 헛되다고 말합니다. 전도자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낫고, 심지어 아직 출생하지 않아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고까지 말합니다. 핍박과 학대를 당하며 고통스러워 하는 것도 문제지만, 해답(위로)이 없는 이 세상의 현실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 자체를 발견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피해자나 가해자 양자 모두가 하나님을 떠난 삶, 예수님의 생명이 없는 인생에 대한 충격적인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수고하고 재주가 많다는 것은 성공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데 그것은 자기 야망을 성취하기 위해 두 손에 무언가를 가득 쥐고도 더 얻으려고 수고하는 이기심과 같아서 결국 평온함이 없으며 그것 또한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이 허무한 인생입니다. 예수님이 보여 주신 대로, 상처와 고난과 아픔 중에 주시는 부활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성공적인 인생입니다.

* 억울하게 학대와 핍박을 받을 때, 열심히 수고하며 공들인 사업 혹은 사역이 남의 시기를 받을 때 어떻게 반응하며 해결했나요?

인간은 학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모진 역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악한 사람이나 세력에 의해 끊임없이 억압당하고 빼앗기거나 천재지변과 불의의 사고로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찾아오는 학대 혹은 역경을 완전히 극복하게 해 주는 진정한 위로를 만나기란 사실 불가능해 보입니다. 악한 사람, 불의의 사고가 할퀴고 간 상처와 아픔은 무엇으로도 해결될 수 없습니다. 전도자는 이러한 학대를 해결할 수 있는 진정한 위로를 전혀 찾을 수 없는 인생이기에 허무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구원자이며 심판자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는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즉 학대라고 일컬을 수 있는 고난과 핍박이 오히려 그리스도인의 삶에 기쁨과 영광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학대를 받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도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궁극적인 영광과 기쁨이 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들은 자신의 재능을 활용해서 사업을 운영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경쟁하거나 자기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기에 언제라도 평강을 누립니다.

2. 전도자는 해 아래에서 가족이나 친구가 없는 현실, 그리고 권력에 대해 각각 어떻게 평했나요?(7~12절, 15~16절)

아들이나 형제, 친구 없이 홀로 있는 사람은 자신이 수고한 것을 누군가와 나누거나 함께 누릴 수 없고, 둘이 함께 수고함으로 더 좋은 상을 얻을 수도 없으며, 위기를 당할 때 도움을 받을 수도 없어 불행합니다. 또한 전도자는 권력 자체에 대해서도 회의적입니다. 권세는 한 시절에 불과하고 새로운 권력이 나타나면 잊히는 것이기에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입니다.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고 아내도 없이 홀로 있는 사람은 끝없이 수고하더라도 결국에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기에 그것 또한 헛된 것이라고 전도자는 말합니다. 이는 수고한 결과를 나누거나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측면에서 그의 외로움에 주목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렇게 홀로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군가와 함께하는 사람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고, 위기의 순간에 넘어져 있을 때 일으켜 주고 따뜻하게 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불행합니다. 이러한 전도자의 고백은 개인주의적인 인생의 외로움과 고통을 부각하며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반면 늙고 둔한 왕 대신에 젊고 지혜로워 백성의 환영을 받던 새로운 왕도 그 후에 오는 자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합니다. 이러한 사례를 들어 전도자는 세상의 권력과 명예도 순간적인 것임을 지적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권력과 명예와 인기는 잠깐일 뿐이며 영원할 수 없기 때문에 헛된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고 전도자는 말합니다.

* 어려움과 위기 속에서 가족, 친구, 동료가 없어서 외로웠거나 공동체의 필요성을 느낀 적이 있다면 함께 나누어 보세요.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을 가장 두렵고 절망스럽게 만드는 것도 소외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사연인지 가족이 없는 사람도 있고, 가족이 있어도 서로 무시하며 원수같이 여기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가족 공동체에서 누리고 나눌 수 있는 안식과 위로,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안정감도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비뚤어진 성격이나 성숙하지 못한 태도 때문에 친구나 동료와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하고 홀로 지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협력과 지원, 상호 보완과 보호라는 공동체적인 유익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전도자가 전하는 공동체적인 삶을 지향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공적인 사회생활과 목표 성취를 위해 인맥을 구축하거나 조직과 사회의 주요한 권력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근본적으로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직 세속적인 성취와 출세에만 집착한다면 그것은 전도자의 고백과 같이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허무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이해를 위한 도우미
본문에 나타나는 ‘해 아래에서’라는 구절은 전도서 전체에서 33회 반복되어 사용되고 있으며 다른 구약성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중요한 표현입니다. ‘해 위에서’를 ‘거룩하신 하나님의 처소’라고 말할 수 있듯이, ‘타하트 하샤메쉬’라는 말의 번역인 ‘해 아래에서’는 ‘피조물이요 죄악 된 존재인 인간의 처소’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해 아래에서’의 세상은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합니다. 이러한 삶은 선악과 사건 이후에 에덴에서 쫓겨 나온 인간이 짊어지고 가야 할 근원적인 운명이며 평생 저주로 안고 살아가야 할 일입니다. ‘해 아래에서’란 인생살이가 펼쳐지는 삶의 모든 영역을 가리키는데 이 영역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이 헛되기에, ‘해 아래에서’라는 말은 전도서에서 언급하는 모든 헛된 것을 대변하는 상징적 의미를 가집니다. 전도자는 ‘해 아래에서’라는 말을 창조주를 떠나 타락한 인간의 삶과 운명이 펼쳐지는 공간으로 사용합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해 아래에서’의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은 결코 헛됨(헤벨)을 피할 수 없기에 ‘해 아래에서’는 ‘헤벨’의 시·공간적 배경이며 ‘헤벨’은 ‘해 아래에서’ 살아가는 인생의 내용입니다.


생활속으로
아래 질문들의 의도는 성경의 가르침을 일상에 적용하는데 도움을 주려는 것입니다. 질문들 밑의 칼럼은 토론을 진행하는데 추가적인 안목을 주기 위해 제공된 것입니다. 각 질문에 대한 생활 나눔을 마치고 참석자들 중에 한 사람에게 읽도록 해도 좋습니다.
해 아래에서 인생은 학대받지만 위로받지 못하고, 학대하지만 심판받지 않는 모순 속에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과 실력을 중시하고 세속적인 경쟁과 이기심으로 성공을 추구하지만, 참된 평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생은 고난과 핍박을 오히려 기쁨과 영광으로 여기고,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성공의 발판이 아닌 섬김의 기회로 삼으며 부활을 소망합니다. 해 아래에서 인생은 넓은 인맥으로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권력과 명예를 좇을 뿐, 결국 외로움에 빠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생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목적으로 공동체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함께 기도하기
- 학대와 핍박의 현실을 믿음 안에서 기쁨과 영광으로 감당할 수 있는 영적인 안목을 열어 주시고 부활을 소망하게 하소서.
- 주님의 사랑으로 한 영혼,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며 넘어진 지체를 격려하고 일으켜 주는 ‘세 겹 줄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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