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성경공부교재

19-02-25 16:54

19년 3월 10일 주일성경공부교재

동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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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영원한 안식을 선택하라    히브리서 4:1~11

 

 

인도자를 위한 예화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레우코노에여, 신들이 나나 당신을 위해 어떤 운명을 예비해 놓았는지 알려 하지 마세요. 찻잎이나 손금을 읽어 볼 생각도 말고요. 무슨 일이 닥치든 담담히 받아들여요. 이 겨울이 우리의 마지막 겨울일 수 있어요 … 포도주를 짜 마시고, 희망에 대해서는 잊어버리세요. 시간은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중에도 달아나고 있어요. 지금 ‘현재를 붙잡아요’(Carpe diem: Seize the day), 미래는 마음에 두지 말고요”라고 노래했습니다. 언뜻 들으면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라는 긍정적인 메시지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시인의 인간적인 ‘카르페 디엠’(Carpe diem) 사상에는 죽음에 대한 깊은 두려움과 그 앞에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의 연약함이 그대로 묻어나 있습니다.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만큼 현재 매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성경도 오늘을 꼭 붙잡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비슷한 듯 보이지만 완전히 반대되는 내용을 말합니다. 오히려 미래에 대한 충만한 기대감을 가지고, 인생의 중대한 선택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바로 오늘 그 운명을 결정지으라는 말입니다.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7절)라는 말씀에서 ‘오늘’은 바로 ‘내게 아직 생명이 남아 있는 동안에’, ‘아직 기회가 남아 있는 동안에’, ‘더 늦기 전에’를 의미합니다. 오늘 그분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세상의 헛된 기쁨과 즐거움에 빠져 살지 말고 즉시 응답해, 바로 오늘 영원한 안식(미래)을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현재 최선을 다하는 그 일은 미래 하늘나라와 어떤 관련이 있나요? 

본문 읽기
히브리서 4:1~11을 함께 읽습니다.
배경 이해하기

본 장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저질렀던 불순종의 죄악에 다시 빠지지 말고 예수님을 믿고 순종함으로써 참되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것을 권면합니다. ‘안식’(카타파우시스)에는 여러 차원이 있는데, 히브리서 기자는 이 단어를 세 가지 다른 의미로 사용합니다. 첫째는 사람이 고단한 일상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삶 속에서 평안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셋째는 복음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 영원한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 가운데는 율법이 주는 구원 약속만을 굳게 신뢰하며 선민사상을 가지고 구약의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한 이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의 영도로 출애굽했던 백성이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은 사건을 상기시키고, 또 여호수아가 백성을 인도해 가나안 땅에 들어갔지만 참안식을 누리지 못한 것을 볼 때, 아직도 들어가야 할 진정한 안식이 남아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유한하고 불완전한 인간 지도자나 이 땅의 안식에 만족하지 말고, 모세보다 우월하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위의 것을 사모하도록 권면합니다. 

말씀 나누기
관찰과 묵상 
히브리서 기자는 처음 안식에 들어갈 약속을 받은 자들이 그 약속을 누리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하나요?(1~2절)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약속을 받았으나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출애굽해 광야 길을 가던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에 당도하기 직전에 12명의 정탐꾼을 보내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했습니다.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에 백성은 절망과 원망으로 반응했고, 결국 2명을 제외하고 아무도 두 번째 의미의 안식(가나안 입성)에 들어가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 곧 그분의 약속을 믿지 않았고,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불순종하는 사람들은 그분이 예비하신 ‘안식’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약속을 믿음과 결부시키지 않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안식’ 개념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처음으로 성경에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6일간 세상을 창조하시고 7일째 안식하셨는데(창 2:2~3),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의 노동이 너무 힘드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모든 창조를 마치시고 인간과 온전한 관계를 맺으시려는 의도에서 하루를 안식일로 구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단순히 놀고먹는 휴일과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7일째에 ‘안식’하셨다고 했지만, 그날 이후로도 지금까지 계속해서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며 생명을 유지시키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요 5:17). 다만 그분이 바라는 것은 주님을 떠나 안식이 없는 인간들이 창조주와 참된 관계를 맺음으로써 본래 모습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참된 안식입니다. 

적용과 나눔
몸과 마음에 안식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후일 하나님이 주실 완전한 안식이 어떠할지 나누어 보세요.
 
인간이 이 땅에서 누리는 안식은 유한한 것이어서 언젠가는 곧 없어져 버릴 것입니다. 개인의 역사와 인류의 역사가 종말을 맞을 때, 믿는 자들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게 됩니다. 사람들은 흔히 천국을 피안의 세계라 부르며, 이 땅에서 고된 삶을 벗어나 영원히 무위도식하는 낙원과 같은 곳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성경은 천국이 죽음의 권세가 넘보지 못하는 곳으로,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인간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처음 모습으로 돌아가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노동의 가치를 회복하게 된 인간이 일을 더 이상 고통으로 여기지 않고 진정한 자아실현의 기회로 여기며, 기쁨으로 일하면서 영원한 평안과 행복을 누리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잠시 맛보는 ‘안식’이 하늘나라의 예표(prefigure)에 불과하며, 하늘나라에서 온전히 맛보게 될 영원한 안식이야말로 본래 우리가 소망해야 할 목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관찰과 묵상 
히브리서 기자가 다윗의 시편을 인용해 오늘 하나님 음성을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7~11절)
 
이스라엘이 들어간 가나안이 영원하고 완전한 안식의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 음성에 순종해 영원한 하늘나라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40년 광야 고난이 끝나고 마침내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이스라엘은 잠시 ‘안식’을 누립니다. 그러나 히브리 기자는 그것이 하나님이 의도하신 ‘영원한 안식’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 후 500년이 흐른 뒤,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재차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누리는 안식은 하늘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안식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여호수아를 통해 이스라엘이 얻게 된 안식이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것’이었다면, 훗날 온 인류가 동일한 이름을 가진 예수(‘구원하다’ 여호수아의 헬라식 발음)를 통해 얻게 되는 안식은 ‘완벽하고 무한한 안식’이 될 것입니다. 두 안식은 일견 유사해 보이나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전자는 매우 불완전한 것이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한 모세조차도 징계를 받음으로 그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고, 심지어 들어간 백성도 늘 침략자들에게 위협받아 참다운 ‘안식’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개인의 종말이 언제 찾아올지, 인류 역사의 종말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기에 바로 ‘오늘’,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고, 믿음으로 구원을 선택함으로써 영원한 평강과 안식에 들어가야 합니다. 

적용과 나눔
영원한 안식을 소망하기에 내가 오늘 순종할 하나님 말씀은 무엇이며, 이겨 내야 할 세상 유혹은 무엇인가요?
 

마라톤 선수는 마지막 결승선이 어디쯤 있는지 잘 알기에 머릿속으로 그것을 염두에 두며 안정적인 레이스를 펼칠 수 있습니다. 그는 모든 구간에 걸쳐 세심하게 체력을 안배하기에 끝이 가까워지고 체력이 떨어져 고통스런 시간이 찾아와도 결승선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족과 수많은 관중의 환호, 그리고 상급을 바라보며 새 힘을 얻습니다. 결승선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달리기 선수들에게 큰 힘이 되는 것처럼, 순례 여정을 가는 사람들이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잘 마치기 위해서는 종말론적인 확신이 필요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안식의 ‘그림자’로서 우리에게 잠시 주어지는 이 땅의 안식에 만족하지 말고, 세상의 유혹과 시험을 이기며 원형이 되는 천국의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11절). 

성도는 이 땅에서 잠시 맛보는 편안함에 만족하지 말고 영원하고도 완전한 안식을 소망해야 합니다. 개인의 종말이 언제 찾아올지, 인류 역사의 종말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기에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고 바로 ‘오늘’, 믿음으로 구원을 선택해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받아들여 영원한 안식을 선택했다고 해서 구원이 완성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긴 영적 광야 생활의 시작입니다. 안식에 들어갈 약속을 받았지만 그 약속을 상실했던 이스라엘을 따라가지 말고,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인생 광야 길에서 성화되어 갈 때 우리는 비로소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리더는 오늘 나눈 말씀이 기도로 마무리되도록 인도합니다. 아래 기도 제목을 1개 혹은 2개 모두 사용하거나, 필요에 따라 더 추가해도 좋습니다.
- 천국에서 얻게 될 영원한 안식을 소망하며 이 땅이 주는 안락함에 연연하지 않도록 - ‘오늘’ 주님의 길을 선택하며 종말론적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이렇게 구성원들과 한목소리로 기도한 후 ‘말씀으로 기도하기’를 따라 읽으며 마무리하고, 중보기도(함께 기도하기)로 들어갑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이 땅에서 잠시 누리는 안식에만 집착하지 말고 하늘 본향에서 누릴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게 하소서. ‘오늘’ 주시는 주님 음성에 믿음으로 반응하며 주님 뜻을 온전히 이루는 삶이 되게 하소서. 
1.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을 인정하는 나라가 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는 불변의 진리를 모두가 인정하도록 기도합시다. 

2. 인도 동북부에 거주하고 있는 데오리인은 그들의 언어로 성경이 한 구절도 번역되지 않은 미전도 종족입니다. 이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이 전해지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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