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성경공부교재

14-10-26 10:48

11월 2일 주일성경공부교재

동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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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인 사랑으로 주님 맞이하기 요한계시록 3:14~22

 

이야기속으로
아래 질문들은 이번 과의 주제에 대한 괄적인 나눔을 이끄는 것입니다. 이 질문들의 목적은 솔직한 방식으로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데 있습니다. 정답이 아닌 각자의 답을 나누고, 주제에 대해 생각이 열렸다고 판단되면 '본문 속으로' 넘어가십시오.

몇 달 전, 산부인과에서 유산 방지를 위한 약과 함께 ‘2주간 절대 안정’을 처방받았다. 늦은 나이에 반은 포기했던 아기를 하나님이 주셨는데도 ‘왜 갑자기 백수가 되어 천장만 바라봐야 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2주의 휴식 기간에도 여전히 나의 ‘곤고함, 가련함, 가난함, 눈멂, 벌거벗음’을 깨닫지 못했다(17절). 1개월 더 휴식하라는 처방과 두 차례에 걸친 하혈을 겪으며 결국 퇴사를 결정하고 집에 머물게 되었다. 이 지경에 이르러서야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16절)라는 말씀이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왔다. 생명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아기를 기다리는 기쁨 가운데 적극적으로 몸조리를 하는 대신, 직장 경력을 접고 엄마로서만 사는 것이 싫어 ‘출산 후 언제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만 생각한 나의 이기적인 모습을 회개하게 되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19절). 책망과 징계로 나를 깨우치고 바로잡아 주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한다. 남은 임신 기간에 이기적인 생각이 고개를 들 때마다 주님 앞에 나아가야겠다.

* 복이라고 여겼던 것이 오히려 해가 된 적이 있다면 어떤 경우인가요?

인도자를 위한 예화
영국 노팅엄에는 작은 성당이 하나 있습니다. 그 성당의 벽에는 구세군 창시자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 1829~1912)가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헌신했던 지점을 표시하는 청동패가 있습니다. 어느 날 허름한 차림의 아프리카 사람이 그 작은 성당 안으로 들어와서는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청동패 앞에 이르러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더니 수위에게 물었습니다. “바로 여기가 윌리엄 부스가 무릎 꿇고 기도했던 그곳인가요?” 수위가 대답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러자 그 아프리카인이 다시 물었습니다. “제가 여기에 무릎 꿇어도 되겠습니까?” 수위가 당연히 그래도 된다고 대답하자 그는 무릎을 꿇고 팔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그 열정을 제게도 주시옵소서!”

Sharing Point
오늘날 우리에게도 윌리엄 부스의 열정을 사모하는 이 아프리카인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주님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 영적 교만에 빠져 있던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시며 어서 죄를 회개하고 열정을 회복하라고 촉구하십니다.

 

본문속으로
본문을 통해 발견되는 성경적 가르침을 이번 과의 주제와 연관해 나눠 보는 순서입니다. 세 번의 질문은 모두 해석 질문으로서, 그것을 읽고 해당 본문을 찾아 함께 답을 말해 보십시오.
1. 라오디게아 교회는 어떤 상황이었으며, 그런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주님은 어떻게 책망하셨나요?(15~19절)

라오디게아 교회는 신앙적으로 미지근했으며, 물질적 부유함으로 만족했으며, 자신의 수치를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라오디게아는 교통의 요충지요 공업 중심지였으며 의과대학이 있는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동역자였던 에바브라에 의해 시작된 라오디게아 교회(골 4:12~13)는 바울의 관심 속에 성장했지만 나중에는 주님께 책망받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15절)라는 구절에서, 차다는 것은 불신의 세계로 완전히 돌아선 상태를, 뜨겁다는 것은 물이 끓어오는 것과 같은 열정적인 신앙을 가졌음을 뜻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나는 부자라’(17절)고 했는데, AD 60년에 대지진을 겪었으나 로마의 도움을 거절하고 자력 재건을 했을 정도로 라오디게아는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들이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상태라고 경고하십니다. 다시 말해 영적으로 무지하고 비참하며 분별력이 없고 부패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불로 연단한 금’과 같은 믿음, ‘흰옷’으로 상징되는 그리스도의 속죄, ‘안약’과 같은 성령의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어디에서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를 믿을 때 얻을 수 있습니다.

* 라오디게아 교회와 비교할 때 내 신앙생활은 어떠한가요? 지금 내 삶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을 한마디로 ‘미지근하다’고 평가하십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희생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부분적으로만 발을 담그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주목해야 합니다. 주님은 미지근한 것보다 도리어 찬 것이 낫다는 식으로까지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충격적입니다. 이와 같이 열심을 내지 않고 안일함에 빠져 있는 교회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경고하십니다. ‘미지근함’이 왜 문제가 될까요? 미지근함은 거짓된 고백을 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 도시는 물질적으로 부유했으므로 자기중심적이고 교만하며 자기 자랑에 빠져 있었고 그들 자신을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자신들의 실상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교회와 성도를 향해 주님은 회개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주님은 세 가지를 명령하십니다. 첫째, 불로 연단된 영적인 금을 사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가진 부는 진정한 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째, 흰옷을 사서 입으라고 하십니다. 이들이 지닌 고급 의류로는 벌거벗은 수치를 가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셋째, 안약을 사서 발라야 합니다. 그들이 자랑하는 유명한 안약으로는 그들의 영적인 눈을 고칠 수 없으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입니다. 지금 우리 각자에게도 필요한 것이 있음을 깨닫고 주님 말씀대로 회개해야 합니다.

2.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무엇을 행하신다고 말씀하시나요? 승리한 성도에게 주어진 약속은 무엇인가요?(20~21절)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찾아오셔서 그 문을 두드리시며 함께 교제하자고 초청하십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고난을 이긴 성도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제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마치면서 주님은 모든 교회를 향한 약속을 선포하십니다. 여기서 ‘문’(20절)은 자신들의 영적 비참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교회나 사람들의 ‘마음 문’을 말합니다. 주님은 이 문 앞에 서서 계속 ‘두드리고’ 계십니다. 한 번 두드리고 응답 없으면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두드리십니다. 인격적으로 결정하여 마음 문을 연 교회나 죄인들에 대해 예수님은 무엇을 약속해 주십니까?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20절)고 말씀하십니다. 함께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고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화해와 신뢰, 친밀감’의 표시입니다.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창녀들과 함께 식사하신 것처럼, 그리고 제자들과 더불어 성만찬을 행하신 것처럼, 이제 마음 문을 연 그들과도 교제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또한 주님은 종말론적 전투에서 승리한 모든 ‘이기는 자’에게 자신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지상에서 승리한 모든 교회에게 주님은 ‘함께 왕 노릇’하는 종말론적 영광을 주실 것입니다.

* 주님이 나와 교제하기 원하심을 언제, 어떻게 느끼나요? 주님과 친밀하게 교제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일지 나누어 보세요.

라오디게아 성도들은 왜 주님을 향해 마음의 문을 닫고 있을까요? 그들은 주님께 신실하지 못하고 미지근한 신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질적 부요함에 만족하여 자신의 영적인 궁핍함과 벌거벗음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 삶의 문을 두드리시며 나의 허상을 깨뜨리시고 실제 모습을 깨닫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해야 합니다. 주님은 나의 인생을 향한 ‘노크’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이런저런 상황을 통해 내게 말을 걸어오십니다. 그분은 비인격적으로 내 마음에 들어오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마음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리시며 인내하십니다. 그래서 결국 내가 문을 열면 주님은 화해와 사랑의 만찬을 나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바로 지금 그러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려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이 세상에서 종말론적인 싸움에서 이기며 나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 보좌 우편에 함께 앉게 해 주시리라 약속하십니다. 현재의 역경을 통과하고 승리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얻게 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는 달려가야 합니다. 

본문 이해를 위한 도우미
‘라오디게아’(Laodicea)?는 BC 3세기 중엽에 안티오쿠스 2세가 그의 아내 라오디케(Laodice)의 이름을 붙인 도시로, 빌라델비아로부터 동남쪽으로 약 70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라오디게아는 에베소에서 수리아에 이르는 대로변에 위치하여 교통 및 통상의 요충지였으며, 목화 재배와 금융업, 의학이 발달한 곳으로 유명했습니다. 이 도시에 거주하는 이들은 주로 흑양모로 짠 화려한 의복을 팔아 부를 축적했습니다. 또한 유명한 의과대학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생산된 안약은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15절)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일반적인 식사 관습을 염두에 두신 표현으로 보입니다. 날씨가 더울 때는 차가운 것을 마셔야 하고, 추울 때는 따뜻한 것을 마셔야 합니다.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것은 어느 식사 자리에도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흰옷’(18절)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것, 즉 ‘순결’, ‘성결’을 의미합니다. ‘먹으리라’(20절)로 번역된 ‘테이프네소’는 본래 저녁 식사를 뜻하는데 예수님이 죄인들과 함께 하셨던 식탁의 친밀한 교제를 말합니다.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21절)란 단순히 보좌에 앉는 것뿐 아니라 통치권과 권세와 명예를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생활속으로
아래 질문들의 의도는 성경의 가르침을 일상에 적용하는데 도움을 주려는 것입니다. 질문들 밑의 칼럼은 토론을 진행하는데 추가적인 안목을 주기 위해 제공된 것입니다. 각 질문에 대한 생활 나눔을 마치고 참석자들 중에 한 사람에게 읽도록 해도 좋습니다.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상황에서 주님에 대한 열정이 식어 버린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책망은 오늘날 우리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주님은 이처럼 미지근한 신앙을 가진 자를 토해 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16절). 믿음이 이처럼 후퇴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마 아쉬울 게 없다는 자만 때문일 것입니다. 눈멀고 가난하고 곤고하고 벌거벗은 자신의 모습을 깨달을 때 비로소 처음처럼 겸손하게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내 힘이 아닌 ‘주님의 의’를 의지하는 것은 ‘불로 연단한’ 믿음을 통해 가능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과 깊이 교제하며 종말의 때에 환난을 이기고 승리해 영광의 보좌에 함께 앉을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기
- 제 힘으로 무언가 이룬 것처럼 교만했음을 회개합니다. 가난하고 벌거벗은 제 참모습을 보게 하시고 겸손히 주님만 의지하게 하소서.
- 제 마음 가운데 계시는 주님과 늘 더불어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소통하며 참된 기쁨과 영적 승리를 경험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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