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성경공부교재

14-11-03 09:28

11월 9일 주일성경공부교재

동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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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에게 고난은 영광의 그림자 요한계시록 7:9~17

이야기속으로
아래 질문들은 이번 과의 주제에 대한 괄적인 나눔을 이끄는 것입니다. 이 질문들의 목적은 솔직한 방식으로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데 있습니다. 정답이 아닌 각자의 답을 나누고, 주제에 대해 생각이 열렸다고 판단되면 '본문 속으로' 넘어가십시오.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 곧 열방에서 구원받은 사람이 모두 나와 보좌 앞에 서서 어린양과 하나님을 높이는 장면을 묵상하며, 이 땅의 삶을 마치고 천상에서 이들과 함께 예배하는 모습을 꿈꾸어 본다. 이 땅의 백성인 동시에 하늘의 백성임을 생각하며 광야 같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될까? 천상의 예배에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할 수 있도록, 먼저 믿은 자로서 믿지 않는 가족과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며 사랑과 섬김의 통로가 되어야 하는 사명을 깨닫는다. 딸아이는 요즘 전도 폭발 훈련을 통해 서울역, 용산역, 병원 등지에 나가 전도 실습을 하고 있다. 나는 지인이 선교사로 나간 타지키스탄, 그리고 우리 교회 소속 선교사님이 계시는 남수단과 에티오피아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렇게 우리는 후방에서 전도와 중보 기도로, 선교사님들은 전방에서 헌신과 수고로 하늘나라 백성을 세워 가며 훗날 함께 모여 천상에서 드릴 예배를 꿈꾸어 본다. 하나님이 내게 연결해 주신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을 위해 꾸준히 기도해야겠다고 다짐한다.

* 울다가 웃은 적이 있다면 어떤 경우였는지 이야기해 보세요.

인도자를 위한 예화
성경 번역 선교사는 문화 혜택이라고는 전혀 누릴 수 없는 오지에서 사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어만 존재하는 오지 부족 안에 들어가 그들의 언어를 습득해 부족 문자를 만들고, 또 그 문자로 성경을 번역하는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성경 번역을 위해 부족과 함께 살다 보면 오해도 생기고 어려운 일도 참 많이 겪습니다. 그럴 때마다 선교사들이 위안을 받는 방법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한 선교사님이 기도 편지에서 그 방법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경비행기를 이용해 부족 마을까지 오가는데 그 여정이 주는 큰 유익이 있습니다. 비행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부족 사람들이 일구고 있는 밭과 양철 지붕 집들이 성냥갑처럼 보이고 사람들은 개미처럼 작아 보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열대 자연의 대장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구름 위로 비행기가 올라서면 눈 쌓인 벌판 위를 달리는 것 같습니다. 구름 위에서는 변화무쌍하던 열대의 날씨도 사라집니다. 그러면 어느새 그동안 전전긍긍하던 일들이 아무것도 아닌 일로 여겨집니다. 고도가 높아지고 지상에서 멀어짐에 따라 땅에서의 일들을 잊고 어느덧 하늘로만 시선을 두게 됩니다. 비행을 마치고 지상으로 내려오면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하늘이 선포하는 하나님의 영광에 압도되어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Sharing Point
현실은 우리에게 위안을 주기보다 위기의식을 줍니다. 현실만을 보고 살면 몰아치는 위기와 걱정과 근심에 압도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눈을 들어 우리를 붙들어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상황을 통해 우리를 더욱 성장시키실 영광의 주님을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본문속으로
본문을 통해 발견되는 성경적 가르침을 이번 과의 주제와 연관해 나눠 보는 순서입니다. 세 번의 질문은 모두 해석 질문으로서, 그것을 읽고 해당 본문을 찾아 함께 답을 말해 보십시오.
1. 흰옷을 입고 보좌와 어린양 앞에서 찬양하는 사람들은 누구며, 그 수는 얼마나 되나요? (9~10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종려 가지를 들고 찬양합니다.
9절부터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살아남을, 그분의 많은 백성의 모습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인 맞은 하나님의 종들이 장차 누리게 될, 현재의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천국의 모습입니다. 요한은 인 맞은 사람의 숫자를 144,000명이라고 했지만(4절), 9절에서는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를 목격하고 그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그들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큰 무리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 모든 민족으로부터 나온 사람들입니다. 요한이 목격한 큰 무리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구원 역사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즉 그 무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4절에서 묘사한 인 맞은 하나님의 종들인 것입니다. 유대인인 요한은 구원받은 사람들 중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에 먼저 관심을 갖습니다(4~8절). 하지만 죽어 마땅한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과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은 144,000이라는 숫자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세상의 모든 민족으로 구성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그 큰 무리보다 큽니다. 

* 가정이나 일터 등에서 신앙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나요? 그때 어떤 생각을 했나요?
세상은 종말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사회의 모든 분야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어서 그 속도를 따라가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정보 통신 기술의 놀라운 발전은 우리의 삶을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권위와 기존 질서가 무시되고 가치에 대한 정의가 새로워지는 이 시대의 변화는 우리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반기독교 정서도 계속 확대되고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여러 가지 공격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물론 공격을 자초한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향한 영적 공격은 훨씬 조직적이고 집요합니다. 개인에게도 이런 영적 전쟁과 고난이 있습니다. 가슴 아픈 일이고 두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은 마치 엘리야가 고백했던 것처럼 홀로 신앙의 싸움을 싸워야 하는 것 같은 외로움을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 때문에 고난을 겪는 것은 혼자만의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고난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 고난의 끝엔 말로 다 할 수 없는 영광이 있습니다. 그 영광을 144,000명과 허다한 무리가 보여 주고 있습니다. 어려움이 다가올 때는 구원자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현재 당하는 어려움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해 주는 예배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는 소망의 우물과도 같습니다.

2. 환난을 거쳐 온 사람들에게 어린양 예수님과 하나님은 어떤 은혜를 베푸시나요?(17절)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은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은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십니다. 
13절부터는 셀 수 없는 큰 무리에 대한 설명이 더 구체화됩니다. 하나님은 이 무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요한에게 설명해 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것은 고난 속에서 낭패감에 빠진 그 당시 성도들과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장로는 그들이 큰 환난에서 나온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그 많은 사람이 한 번의 큰 환난을 통해 모두 함께 죽임을 당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겪는 크고 작은 환난에 대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당하는 고통은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큰 것으로 보이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린양의 피로 죄 씻음을 받아 옷이 희게 된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환난과 고난 중에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본 사람들입니다(고전 2:2). 하나님은 그런 과정을 거쳐 구원의 백성이 된 사람들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시고 마음속의 모든 울분을 씻어 주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의 목자가 되어 주시는 분, 눈물을 씻어 주시는 분을 소망하는 것은 현재의 어려움을 넉넉히 이기게 하는 힘이 됩니다. 

* 공동체 안에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사람이 있나요? 어떻게 하면 그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요?
교회에서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다 보면 자신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상처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심한 경우에는 공동체를 떠나기도 합니다. 우리에겐 그들을 품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원하십니다. 성도들은 세상 속에서 힘든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전쟁 중에 있을 때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기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모두 같은 대열에서 전쟁을 치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치르는 전쟁과 내 주위 사람이 치르는 전쟁은 상대가 같다는 점에서 사실상 같은 전쟁입니다. 그래서 나도 힘들고 어렵지만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중보로 돕는 것은 내가 치르는 전쟁에도 도움이 됩니다. 주위에 도움이 필요하고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을 붙여 주신 것은 이 전쟁에서 함께 승리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환난과 어려움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싸워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천국을 미리 맛보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본문 이해를 위한 도우미
144,000명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이 숫자를 영적인 의미로 보고 있습니다. 어떤 이단의 주장처럼 144,000이 구원받기로 정해진 사람의 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은 수많은 구원받은 백성 중 유대인의 수가 궁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숫자도 하나님의 성품을 생각해 볼 때 유대인 중에서 구원받기로 정해진 숫자인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9절의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은 144,000과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누구인지 더 명확히 보여 주는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누구를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세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 ‘큰 무리’는 144,000이라는 수로 상징된 자들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144,000은 유대인을 뜻하고 ‘큰 무리’는 큰 환난 가운데서 구원받은 이방인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셋째, ‘큰 무리’는 큰 환난 때 짐승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순교자들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해석 중에서 자의적인 해석을 최소화하고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첫 번째 해석이 가장 타당성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생활속으로
아래 질문들의 의도는 성경의 가르침을 일상에 적용하는데 도움을 주려는 것입니다. 질문들 밑의 칼럼은 토론을 진행하는데 추가적인 안목을 주기 위해 제공된 것입니다. 각 질문에 대한 생활 나눔을 마치고 참석자들 중에 한 사람에게 읽도록 해도 좋습니다.
본문은 일곱 인 재앙이라는 끔찍한 고난의 상황에서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미래를 가 보는 것과 같습니다. 이후 일곱 번째 인의 재앙, 일곱 나팔의 재앙, 일곱 대접의 재앙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도 하나의 고난이 지나가면 더 큰 고난이 다가오고, 그 고난이 지나가면 더 참혹한 상황이 닥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그 속에서도 빛을 보게 하고 소망을 품게 합니다. 고난이 끝이 아니며, 마침내 우리도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영광과 축복의 순간을 맞이하게 됨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가 고난을 이기고 보좌 앞에 서기까지 끊임없이 격려하시며 응원하십니다.

함께 기도하기
- 영적 전쟁에 함께할 믿음의 동역자를 세워 주시고, 위로자요 인도자 되신 주님의 손을 붙잡고 고난 속에서도 승리하게 하소서.
- 어려움을 겪는 지체들에게 관심을 갖고 기도해 주며 마음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게 하시고, 그로 인해 천국의 아름다움을 맛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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