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성경공부교재

14-11-30 14:51

12월 7일 주일성경공부교재

동부교회
조회 수 1,10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목록

슬프다 이 성이여! 예레미야애가 1:1~11

이야기속으로
아래 질문들은 이번 과의 주제에 대한 괄적인 나눔을 이끄는 것입니다. 이 질문들의 목적은 솔직한 방식으로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데 있습니다. 정답이 아닌 각자의 답을 나누고, 주제에 대해 생각이 열렸다고 판단되면 '본문 속으로' 넘어가십시오.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본 예레미야의 눈물과 비통함 너머로 하나님의 눈물과 마음이 보인다. 열방의 공주였던 유다가 과부처럼 되고(1절), 하나님이 아닌 대적들의 다스림을 받게 된 것은 ‘죄’ 때문이다(5, 8절). 이전에 누렸던 ‘모든 영광’이 떠난 비참한 현실(6절)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더러운 것이 옷깃에 묻어 있는데도 그들이 나중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9절). 왜 이런 곤고함을 겪는지 모른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유다는 이렇게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하나님을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붙잡고 우상도 붙잡은 것뿐이다.” 나 역시 그랬다. 하나님도 좋고 돈도 좋았다. 이렇게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양다리 걸치는 것이 죄임을 몰랐던 나에게 모든 것이 끊어진 포로 생활 같은 고난을 허락하신 것은 공의로운 하나님의 또 다른 사랑 표현이었다. 내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만 의지하게 된 그 시간이 없었다면, 과연 내가 이 사랑을 알 수 있었을까? 아직 포로지에 있는 듯한 현실이지만 하나님과 순수한 사랑을 나눌 수 있기에 행복하다.

* 잘못을 범해 누군가에게 크게 혼난 적이 있다면,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이야기해 보세요. 

인도자를 위한 예화
1842년 프랑스 정부는 폴 에밀 보타(Paul Emile Botta)를 티그리스 모술(Mosul) 지역에 보내서 그 일대 지역에 옛 도시인 니느웨의 잔재가 남아 있는지를 고고학적으로 탐사해 보도록 했습니다. 모술 및 그 일대에서 탐사 활동을 벌이던 학자들은 마침내 그 지역에서 그 옛날 교만했던 도시, 니느웨의 잔재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원래 니느웨는 약 730만 헥타르에 이르는 큰 도시였고, 그 도시 한편으로는 티그리스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니느웨는 내벽과 외벽으로 된 성곽, 해자(垓子, 강 주위에 둘러 판 못) 및 강으로 둘러싸인 견고한 성채였습니다. 그러나 메대와 바벨론의 군대를 막아 내기란 역부족이었습니다. 니느웨는 결국 처절하게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나훔 선지자는 니느웨를 보며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말했습니다(나 3:1). 그리고 그 멸망을 애곡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나 3:7). 스바냐 선지자는 니느웨가 멸망해서 황무한 사막처럼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습 2:13~15). 실제로 니느웨는 철저히 멸망당했고 그 폐허는 19세기에 이르기까지 확정 짓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악한 도성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막아설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Sharing Point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방 대적에게 처참하게 짓밟힌 예루살렘 폐허의 현장에서 비탄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도성이 멸망당하고 백성이 포로로 붙잡혀 가는 것을 보며 예레미야는 이 모든 것이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임을 고백합니다.
본문속으로
본문을 통해 발견되는 성경적 가르침을 이번 과의 주제와 연관해 나눠 보는 순서입니다. 세 번의 질문은 모두 해석 질문으로서, 그것을 읽고 해당 본문을 찾아 함께 답을 말해 보십시오.
1. 예루살렘은 지금 어떤 상황이며, 그것을 바라보는 예레미야의 심정은 어떠한가요?(1~4절)

예루살렘은 열국 중에서 큰 성이었는데 과부같이 되고, 열방 중에서 공주 같았는데 이제 강제 노동을 하는 자처럼 되었습니다. 많던 유다 사람들이 환난과 많은 고난 가운데 이방의 포로로 사로잡혀 가고 있습니다. 선지자는 화려하고 활기찼던 예루살렘의 과거 모습을 떠올리며 예루살렘의 멸망에 고통스러워하고 슬퍼합니다. 

예레미야는 선지자로 부름받은 이후 40여 년간 유다 백성을 향해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거듭 외쳤으나 그들은 그 예언의 말씀을 외면했습니다. 그러나 BC 605년부터 예루살렘에 대한 바벨론의 공격이 시작되었고 시드기야 11년(BC 586년) 5월 10일에 예루살렘은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성전과 왕궁은 불에 타서 무너지고 제사장과 방백과 유력한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예루살렘이 폐허로 변해 가는 참혹한 광경을 직접 목격한 선지자는 그 처참한 상황을 상세히 묘사하면서 그 슬픔과 비통함을 다섯 편의 애가로 표현합니다. 선지자는 먼저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백성이 죽거나 포로로 끌려갔기에, 예루살렘 성읍이 적막해졌다고 말합니다. 바벨론에 의해 파괴되고 불타 버린 예루살렘 성은 과거 아름다웠던 모습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과부처럼 보잘것없고 초라해졌습니다. 이제는 이방에 조공을 바치는 비천한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백성이 살육당하고 포로로 붙잡혀 갔기에 절기 때마다 드리던 성전 예배도 끊어졌다고 예레미야는 탄식합니다.

* 하나님의 영광과 보호가 떠난 예루살렘 모습은 참담합니다. 공동체와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누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황폐해진 예루살렘의 모습은 하나님의 영광과 보호가 떠나 버리면 하나님의 백성이 얼마나 참담한 처지에 처하게 되는가를 잘 보여 줍니다. 예루살렘이 과거에 영화를 누렸던 것은 하나님이 보호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거리와 성전이 많은 사람들로 가득하고 웃음소리가 들렸던 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열국 중에서 강한 나라가 되고 열방 중에서 공주와 같이 존귀하게 대접받았던 것도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보호막이 사라지자 유다 백성은 약하고 상한 모습으로 쇠락해졌습니다. 강한 대적이 들이닥쳐 하루아침에 가족을 끌어가고 성전 기물을 강탈해 갔습니다. 집과 거리는 불태워지고 칼로 무너졌습니다. 안락하고 활기찼던 성안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하고,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이 적막한 성읍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배가 끊어짐으로써 제사장들은 탄식하고, 절기마다 즐겁게 노래하며 춤추던 처녀들은 근심에 잠겼습니다. 지금 내 삶에 무너지고 황폐해진 부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2.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환난과 고통을 당하는 이유를 어디에서 찾고 있나요?(5, 8~9절)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고 유다 백성이 포로로 사로잡혀 간 것은 그들의 죄 때문입니다. 유다 백성의 범죄로 인해 예루살렘은 환난을 당하고 곤고해지고 조소거리가 되었습니다. 

선지자는 예루살렘의 비극적인 상황을 보며 탄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 비극의 원인에 눈을 돌립니다. 하나님의 도성으로 불리던 예루살렘의 멸망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들의 죄에 대해 하나님이 심판하셨기 때문입니다. 유다의 선왕(善王)이었던 요시야 이후에 있었던 왕들은 모두 죄악 된 욕망과 그릇된 판단으로 나라를 통치했으며 예레미야를 핍박하고 그의 예언을 배척했습니다. 백성들 역시 우상 숭배와 영적 타락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 이방 족속을 통해 임한 것입니다.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그의 원수들이 형통’하게 되었으며 유다의 어린 자녀들이 포로로 사로잡혀 갑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이 범죄로 인해 더러워지고 낮아졌다고 말합니다. 즉 죄로 인해 불결해졌기에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내치셨다는 것입니다. ‘더러운 것이 그의 옷깃에 묻어 있다’는 것은 예루살렘이 이방의 풍습을 좇고 그들의 신을 예배했음을 말합니다. 

* 요즘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죄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지금 회개와 결단의 시간을 가져 보세요. 

예루살렘이 당한 끔찍한 환난의 주요 원인은 우상 숭배였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이라고 예레미야가 예언했을 때 백성들은 왜 그런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 조상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서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나를 버려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라”(렘 16:11). 나라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기 시작하면서 사회가 악해지고 백성은 우상을 섬기게 된 것입니다. 파괴된 예루살렘 성읍을 바라보고 슬퍼하며 울던 예레미야는 이제 그 고통의 원인이 외부의 대적 바벨론이 아니라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의 죄악임을 선포하며 유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촉구합니다. 과거에 예레미야가 똑같은 말씀을 외쳤을 때는 듣지 않았던 백성이 이제는 선지자의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될 때 가장 시급한 일은 눈을 들어 하나님을 주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신의 죄와 잘못이 드러난다면 빨리 회개하고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입니다. 

본문 이해를 위한 도우미
“친구들도 다 배반하여”(2절)에서 ‘친구’는 유다가 대표적으로 의지했던 동맹국인 ‘애굽’을 의미하는데 애굽은 BC 586년 바벨론이 유다를 침공했을 때 원군을 파견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애굽이 실질적으로 유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궁지에서 그를 뒤따라 잡았도다”(3절)에서 ‘궁지’는 아주 좁은 장소를 뜻하는 말로, 더 이상 피해 달아날 수 없는 극한 상황에 처했음을 의미합니다. “절기를 지키려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4절). 예전에는 성전에 올라가 절기를 지키려는 순례자들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북적거렸지만 이제는 황량해지고 인적이 끊겼습니다. “그의 더러운 것이 그의 옷깃에 묻어 있으나”(9절)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예루살렘이 이방 풍습을 좇고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숭배한 사실을 말합니다. 즉 예루살렘이 하나님께 ‘음행의 죄’를 범했다는 것입니다. “보물들을 빼앗았나이다”(10절). 이는 바벨론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성전 기구들을 모두 강탈해 바벨론으로 옮겨 간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조차도 제사장 신분이 아닌 이상 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는데 이교도들이 거룩한 성전을 마구 짓밟은 것입니다.
생활속으로
아래 질문들의 의도는 성경의 가르침을 일상에 적용하는데 도움을 주려는 것입니다. 질문들 밑의 칼럼은 토론을 진행하는데 추가적인 안목을 주기 위해 제공된 것입니다. 각 질문에 대한 생활 나눔을 마치고 참석자들 중에 한 사람에게 읽도록 해도 좋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루살렘 성을 의인화해 그 처참함을 실감나게 묘사합니다. 이스라엘은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불순종했기 때문에 다른 이방인보다 더 큰 진노를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본문은 “위로할 자가 없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백성은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하며, 그 길을 걷지 않을 때 모든 영광이 떠나갑니다.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 때 확립됩니다. 본문은 불순종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 사실적으로 보여 줍니다. 그러나 슬픔과 한탄 중에도 자신의 죄에서 원인을 찾고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이 예레미야 선지자가 정확히 의도한 바입니다.

함께 기도하기
- 어려움 가운데 있는 ○○(이)가 일어설 수 있도록 슬픔을 함께 나누며 영적으로,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기도하게 하소서.
- 죄로 인해 고난을 받을 때, 다시금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철저히 회개함으로 죄에서 돌이켜 전화위복의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TAG •
  •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