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성경공부교재

14-12-21 10:33

12월 28일 주일성경공부교재

동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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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구원자  마태복음 1:18~25

이야기속으로
아래 질문들은 이번 과의 주제에 대한 포괄적인 나눔을 이끄는 것입니다. 이 질문들의 목적은 솔직한 방식으로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데 있습니다. 정답이 아닌 각자의 답을 나누고, 주제에 대해 생각이 열렸다고 판단되면 '본문 속으로' 넘어가십시오.
요셉은 동거하기 전에 약혼녀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자, 드러내지 않고 관계를 가만히 끊으려 할 정도로 의로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주의 사자가 꿈에 나타나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어 그 분부대로 행하기 전까지, 요셉은 인간적인 의로움의 한계에 갇혀 있었을지 모른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의로운 모습은 내 방식이 옳다며 내 생각대로 일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묻고 따르는 게 아닐까? 얼마 전 남편이 내게 “당신은 잔소리를 정말 많이 해.”라고 했던 것이 떠오른다. 남편이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생각하며 내 언행을 되짚어 보았다. 오늘 아침에만 해도 대체 세금 보고는 언제 할 거냐며 남편을 다그쳤다. 1년에 한 번 구입하는 주차권을 기한 내에 구입하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나는 시간이나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며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정작 QT 적용 실천하기를 차일피일 미루는 것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제 요셉처럼 일어나 말씀대로 행하며,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사람으로 살아가자.

* 내 이름 또는 내 자녀의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인도자를 위한 예화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병 고치는 권능을 행했을 때 이스라엘의 통치자들과 장로들은 그들을 연행해서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라고 물었습니다(행 4:7). “누가 너희에게 그러한 놀라운 일을 하도록 능력을 주었는가?”라는 뜻으로 물은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는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라고 고백했습니다(행 4:12).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본디오 빌라도에게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라고 외치며 가이사의 이름에 속한 세상 권세와 능력에 힘입어 살아가고 있음을 드러냈습니다(참조, 요 19:15). 우리는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해 살아갈 것인지, 가이사의 이름을 의지해 살아갈 것인지 그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Sharing Point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그동안 기대해 왔던 메시아의 모습과 많이 달랐기에 사람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고 귀히 여기지 않았으며 그래서 그분을 따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며 따르는 제자들을 통해 그 이름으로 인한 구원 역사가 일어났으며 그 이야기는 널리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반면에 세상 권력인 가이사의 힘과 논리를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본문속으로
본문을 통해 발견되는 성경적 가르침을 이번 과의 주제와 연관해 나눠 보는 순서입니다. 세 번의 질문은 모두 해석 질문으로서, 그것을 읽고 해당 본문을 찾아 함께 답을 말해 보십시오.
1. 요셉의 의로움은 어떤 면에서 드러나나요?(19, 25절) 주의 사자가 현몽해 명령한 것에 요셉은 어떻게 순종했나요?(24~25절)

요셉은 정혼한 마리아가 잉태한 것을 알고 마리아가 정죄당하고 처형당하지 않도록 이 문제를 드러내지 않은 채 가만히 파혼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주의 사자의 말씀에 순종해 마리아를 아내로 데려왔지만 출산할 때까지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자 요셉은 주의 사자가 분부한 대로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고 합니다. 

요셉은 약혼녀인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사실을 이미 수태고지를 받은 마리아(참조, 눅 1:26~38)에게서 전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율법에 기록된 대로 행하려면 둘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공표해 그녀로 하여금 돌에 맞아 죽게 하든지(신 22:23~24), 아니면 이혼 증서를 써 주고 내보내는 것이었습니다(신 24:1, 3). 요셉은 마리아와의 관계를 조용히 끊음으로써 자신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이 방법만이 율법 안에서 마리아의 생명과 명예를 보호해 줄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감정을 다스리면서 상대의 문제를 덮어 주고자 노력한 것, 마리아가 출산하기까지 동침하지 않고 성령으로 잉태한 그녀를 지켜 준 것은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또한 요셉은 주의 사자가 현몽한 대로 그 명령에 순종해서 마리아를 아내로 데려오고 마리아가 아들을 낳자 천사의 지시에 순종해서 ‘예수’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 당연히 내 것이라 여겼던 것을, 말씀에 순종해 기꺼이 포기한 적이 있다면 그때 얻은 유익은 무엇이었나요?

하나님이 정혼한 관계인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하게 하신 것은 예수님의 성육신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우선 요셉이 마리아와 육체적인 관계를 갖지 않은 상태에서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기원이 요셉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말해 줍니다. 한편으로는 예수님이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실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요셉이 육신의 아버지로서 법적 울타리를 제공해 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장엄한 구원 계획인 그리스도의 탄생이 요셉의 의로움과 순종을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영적인 원리가 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땅에 있는 인간의 의로움과 순종을 통해서 그분의 계획을 역사와 개인의 삶 속에서 성취하신다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에게 애매하고 곤란한 사건들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우리의 의로운 선택과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 삶 속에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2. 예수님의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21절) 이는 당시 유대인들이 가진 메시아에 대한 기대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예수’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즉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정치적이고 국가적인 해방과 구원을 가져다줄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라고 번역된 헬라어 ‘예수스’는 구약 히브리어 이름 ‘예호슈아’에서 온 단어로서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주의 사자는 요셉에게 아들의 이름을 ‘예수’로 지으라며 그 이유를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실 메시아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하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는 빈곤이나 질병, 전쟁이나 핍박 등으로부터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저희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로 오셨습니다. 인간의 죄야말로 인류를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문제의 근원적인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모든 문제는 인간의 범죄로 인해 인간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엽적이거나 부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모든 문제의 근원인 죄를 해결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할 국가적이며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대했지만, 예수님의 사명은 그것과는 본질적인 의미에서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 예수님은 백성을 ‘어려움’에서 구원할 자가 아니라 ‘죄’에서 구원할 자이십니다. 내 기도 제목들은 어디에 초점이 있나요?

‘예수’라는 이름이 ‘구원자’라는 뜻이지만, 예수님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면하게 해 줄 구원자가 아니라 죄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자로 오셨습니다. 이것을 분명히 아는 것은 우리의 삶과 신앙의 방향을 새롭게 하는 요소가 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물질, 건강, 직업, 환경과 같은 현실적인 영역에서 요구되는 수많은 필요를 충족시키고자 경쟁과 갈등이 불가피한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의 신앙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현실적인 문제도 분명히 하나님의 통치 영역 안에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신앙생활의 중요한 우선순위를 하나님의 관계 형성에 두기보다 현실적인 필요를 채우는 일과 세상적인 축복에 두는 것은 기복신앙의 일종으로서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 제목을 살펴보면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빈민 운동가, 정치적 혁명가, 질병 치유자, 예언자 등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이것 역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로마의 압제로부터 그들을 해방할 정치적 구원이나 현실적 궁핍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경제적 구원에 관심을 가지고 메시아를 기다렸던 것과 유사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이해를 위한 도우미
22~23절의 ‘임마누엘’ 증언은 이사야 7:14의 성취를 언급한 것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BC 735년 아람과 북 이스라엘이 연합하여 유다 왕 아하스를 공격하는 상황에서 아하스에게 주어진 말씀이었습니다. 이 징조는 한 젊은 여자가 아이를 낳을 것인데 그 아이가 장성하기 전에 연합 공격을 감행하는 두 왕이 패망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사 7:13~17). 따라서 이사야 7:14은 표면적으로는 예수님의 처녀 잉태와는 무관한 예언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은 이사야 7:14에서 처음 언급된 이후 8:8, 10에서 다시 나타나고, 임마누엘이라 불리는 그 아이에 관한 구원자적인 묘사도 9:6과 11:1~2에서 계속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이사야 7:14은 역사적으로 어느 한 사건을 가리키는 예언만이 아니라 메시아 예언 사상을 전개해 나가기 위한 도입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태가 이사야 7:14을 예수님의 탄생의 성취로 기록하고 있는 것은 구약 본문에 대한 깊이 있고 폭넓은 이해가 반영된 것입니다.
생활속으로
아래 질문들의 의도는 성경의 가르침을 일상에 적용하는데 도움을 주려는 것입니다. 질문들 밑의 칼럼은 토론을 진행하는데 추가적인 안목을 주기 위해 제공된 것입니다. 각 질문에 대한 생활 나눔을 마치고 참석자들 중에 한 사람에게 읽도록 해도 좋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하나님의 의지와 능력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기사를 보면, 그것이 의로운 사람들의 순종을 통해 역사 속에서 성취됨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힘들어도 말씀에 순종하며 의롭게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우리 삶 속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우리 육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로 인해 단절된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오신 구원자입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신 궁극적인 목적은 현실적인 결핍을 채우는 데 있지 않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의지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데 있습니다.

함께 기도하기
-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을 때, 불평하거나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믿음으로 순종하게 하소서.
- 예수님을 현실 문제 해결사로 전락시키지 않게 하시고, 구원자 되신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해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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