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성경공부교재

19-05-08 09:38

19년 6월 2일 성경공부교재

동부교회
조회 수 1,203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목록

참된 예배자의 바른 삶

예레미야 7:1~15 

 

인도자를 위한 예화

중국의 전국 시대를 이끌어 가던 칠웅 중 가장 강한 나라는 진(秦)나라였고,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왕은 진나라의 시황제였습니다. 시황제의 함양(咸陽)궁에는 신기한 거울이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너비가 4척(약 120cm)이고 높이가 6척(약 180cm) 되는 엄청난 거울이었는데, 앞면과 뒷면 모두가 밝게 빛나는 거울이었습니다. 이 거울 앞에 사람이 서면 거꾸로 선 모습이 나타나고,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지면 자신의 오장(五臟)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몸에 병이 있는 사람이 거울 앞에 서면 환부가 비추었고, 심지어 사람의 나쁜 마음까지도 비추었다고 합니다. 이 거울을 이용해 진시황은 궁궐 안에 있는 신하들의 충성심을 들여다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거울의 이름은 ‘명경고현’(明鏡高懸)으로 ‘높게 매달려 있는 맑은 거울’이라는 뜻입니다. 후에 이 ‘명경고현’은 ‘시시비비를 명확하게 따져서 판단하는 공정무사(公正無私)한 재판관’을 비유하는 고사성어가 되었습니다. 
성경 신학자인 아더 핑크(A. W. Pink, 1886~1952년)는 “성경은 거울과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우리 삶과 마음가짐, 더 나아가 우리 생각과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까지 비추어 주는 거울이기에,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말씀 앞에 스스로를 비추어 보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최근에 성경 말씀을 통해 비추어 본 내 마음 상태는 어떠한가요? 

본문 읽기
예레미야 7:1~15을 함께 읽습니다.
배경 이해하기

예레미야 2~25장은 유다를 향한 총 12편의 단편 예언집 혹은 설교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7장은 소위 ‘성전 설교’라고 불리는 예레미야의 예언인데, 당시 유다는 총체적으로 부패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요시야왕의 종교개혁으로 인해 어느 정도 회복된 듯 보였지만, 요시야 이후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이 차례로 왕위에 오르면서 종교개혁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고 하면서 정작 그들은 우상을 숭배했고, 심지어 성전 안에 우상을 만들어 세우고 그것을 예배했습니다. 그러한 악을 행하면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앗수르 이후 메소포타미아의 맹주가 된 바벨론으로부터 위협을 당하면서도 성전이 있는 한, 성전 예배가 있는 한 자신들은 안전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릇된 안정감이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회개는커녕 거짓말과 도둑질을 일삼고 이기적 탐심을 채우는 데 혈안이 되었습니다. 유다의 신앙적 부패는 결국 총체적 부패의 시작이었고, 그들의 타락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불러왔습니다. 예레미야는 신앙적 부패로 시작된 총체적 부패에 대해 언급하고, 위선적인 성전 예배를 책망하며,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합니다. 

말씀 나누기
관찰과 묵상 
하나님이 명령하신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3절)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3~7절) 이것은 결국 어떤 삶과 연결될까요?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는 것은 이웃에게 정의를 행하며(5절), 약자들을 압제하지 않고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지 않으며(6절),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 것(6절)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결국 참된 예배자의 삶과 연결됩니다. 
예배하러 성전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에게(2절)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은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3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의미는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기는 하지만, 그들의 예배는 성전 안에만 갇혀 있고 그들의 일상은 하나님 백성다운 삶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웃에게 정의를 행하지 않았고, 약자였던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했으며,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렸습니다. 그러므로 이중적이며 위선적인 신앙생활을 버리고, 예배가 삶이 되고 삶이 예배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의미는 성전 안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또 한편으로는 우상 숭배를 하는 혼합주의 신앙을 버리고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섬긴다면 결코 우상을 숭배할 수 없습니다. 유다 백성은 이웃과 관계는 물론 하나님과 관계도 바르지 않았습니다. 이는 참된 예배가 아닌 거짓된 예배였습니다. 

적용과 나눔
내가 생각하는 참된 예배자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요?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가 되기 위해 내가 버려야 할 것과 취할 것은 무엇인가요?
 
참된 예배는 단지 예배당 안에만 있는 의전이 아닙니다. 예배가 하나의 의전이나 형식으로만 끝난다면 그것은 올바른 예배가 아닐 것입니다. 의전적 예배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외하는 외적 표현이라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실재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은 결국 삶으로 나타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종하는 삶은 이웃에게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입니다(5~6절). 이는 바울이 말한 것처럼, 몸으로 드리는 거룩한 산 제사입니다(롬 12:1). 우리 몸(우리 삶)은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 되면 안 됩니다. 우리 몸은 하나님이 줄곧 관심을 보이시며 보호자가 되신다고 자처하신(출 22:22; 신 10:18; 시 68:5; 146:9) 상대적 약자들,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웃을 향한 사랑의 도구여야 합니다. 이것 역시 의전적 예배 이상으로 하나님이 받기 원하시는 삶의 예배입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관찰과 묵상 
예레미야가 언급한 유다의 죄악은 어떤 것들인가요?(8~11절) 유다가 실로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요?(12~15절)
 
거짓말, 도둑질, 살인, 간음, 거짓 맹세 등 온갖 불의함이며, 더 나아가 성전 예배가 지속되는 한 자신들은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거짓 구원에 기초한 믿음입니다. 실로는 회막이 있던 곳이었으나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이 블레셋을 통해 그곳을 치셨습니다. 
예레미야가 지적한 유다의 죄악은 거짓말, 도둑질, 살인, 간음, 거짓 맹세 등입니다. 이 죄악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주신 십계명 중 제6계명에서 제9계명에 위배되는 것들입니다(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뿐만 아니라 제1계명(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과 제2계명(우상을 만들고 섬기지 말라)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온갖 죄악을 저지르면서도 성전에 가서 예배만 드리면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10절)고 말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유다의 모습을 보시며 ‘가증한 일’(10절)이라고 일갈하십니다. 그리고 바른 예배로 가득해야 할 성전을 도둑의 소굴(11절)로 만든 백성에게 과거 왕정 시대 이전의 성소였던 ‘실로’(수 18:1~22; 삿 18:30~31; 삼상 1:3)의 예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엘리 제사장과 그의 아들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범죄로 인해 블레셋에게 파괴되었던 실로의 운명이 곧 닥칠 유다의 운명이라고 하십니다(12~14절). 패역한 유다 백성은 그들이 드리는 종교 의식이 구원을 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권한이고, 그 누구도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구원 얻을 수 없습니다. 선지자의 외침에 따른 마땅한 반응은 회개와 돌이킴이어야 했지만, 그들은 완고해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13절). 

적용과 나눔
과거 역사에서 교훈을 받고 내 삶에 반면교사로 삼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오늘 내 삶에 말씀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과거에 일어난 성경의 사건들을 현재 내 삶에 비추어 봄으로써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바르게 설정하고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 말씀은 과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 말씀을 읽는 우리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무엇을 따라가야 할지를 비추어 주는 거울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역사이면서 동시에 현재 들려지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가나안에서 처음 제사를 드리던 성소인 실로가 파괴된 이유, 에브라임이라 일컫는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한 이유, 그리고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한 이유가 나의 삶의 모습에도 그대로 있지는 않은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이킬지를 말씀을 통해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성경이 보여 주는 역사적 멸망의 전철을 그대로 밟지 않고 바른 신앙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가 삶이 된 사람, 삶이 예배인 사람을 찾으십니다. 바른 예배는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를 넘어 삶의 현장에서 이웃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몸으로 드리는 거룩한 산 제사입니다. 예배와 삶은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참된 예배자는 삶을 통해 하나님 경외함을 나타내야 합니다. 구원에 대한 그릇된 안정감에 도취되어 위선적으로 예배하던 유다의 모습이, 일주일에 한 번 예배드리고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는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위선과 죄악을 살필 때, 바른 신앙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리더는 오늘 나눈 말씀이 기도로 마무리되도록 인도합니다. 아래 기도 제목을 1개 혹은 2개 모두 사용하거나, 필요에 따라 더 추가해도 좋습니다.
- 삶이 곧 예배요, 예배가 곧 삶인 참예배자가 되도록
- 하나님을 사랑함과 이웃을 사랑함이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이렇게 구성원들과 한목소리로 기도한 후 ‘말씀으로 기도하기’를 따라 읽으며 마무리하고, 중보기도(함께 기도하기)로 들어갑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하나님이 찾으시는 진정한 예배자가 되길 원합니다. 위선적·형식적 예배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진실한 삶으로 나타나, 연약한 이웃을 제 몸같이 보듬고 사랑하게 하소서. 
1. 불법으로 개인 정보를 빼내 전화 사기 등 범죄에 이용하는 일당이 그 악한 일에서 손을 떼도록, 이러한 ‘보이스피싱’으로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기도합시다. 

2. 카스피해 연안의 아제르바이잔에 말씀이 흥왕하고 교회가 부흥해, 주변 이슬람 국가들에도 복음이 흘러 들어가도록 기도합시다(「생명의 삶」 181쪽 ‘땅끝에서 온 편지’ 참조). 

TAG •
  •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