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성경공부교재

15-02-15 10:48

15년 2월 22일 주일성경공부교재

동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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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를 타신 왕  요한복음 12:12~19

 

인도자를 위한 예화 
J. B. 필립스 목사의 「당신의 하나님은 누구인가?」(Your God is Too Small)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당신 인생의 크기는 당신이 믿는 하나님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이 말은 자기 수준대로만 하나님을 바라보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내가 보고자 하는 부분만 따로 떼 내어 보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병을 치료해 주시는 의사로, 어떤 이는 자신이 원하는 빵을 주시는 물질 공급자로, 또 어떤 이는 자신의 공허함을 채워 주는 상담가로서의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그런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자신이 만든 하나님을 쉽게 떠납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하나님을 자기 식으로 이용하는 예도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특별한 부름을 받고 태어났다는 수많은 민족들의 시조 왕들의 설화나 서구 절대 왕정 시대의 ‘왕권신수설’은 모두 자기의 욕망대로 하나님의 모양을 만든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를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금으로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축제를 벌였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출 32:4)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내 필요가 충족되지 않은 채 시간만 흘러가고 있을 때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을 만들고 싶은 유혹에 빠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든 우상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본문 읽기 
성령 안에서 요한복음 12:12~19을 함께 읽습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 
성령의 조명하심과 인도하심 없이는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본문을 읽기 전에 인도자는 위의 시편 말씀을 상기시키며 성경의 저자이자 최고의 스승이신 성령 안에서 가장 겸손한 마음으로, 갈급한 마음으로 말씀을 읽도록 소그룹 구성원들을 일깨웁니다. 

배경 이해하기 
마리아가 나드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일은 예수님 장례를 위해 여인들이 향유를 준비한 일을 떠올리게 합니다. 따라서 마리아의 헌신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것으로, 예언적인 행위였습니다. 이 향유 사건 이후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상에서의 사역을 끝맺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고난과 죽음의 현장으로 들어가십니다. 본문(12~19절)의 내용은 구약성경에서 이미 예언된 구속사적 내용의 성취라는 맥락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모습은 스가랴 9:9의 성취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나귀’를 타셨다는 것은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사사들이나 왕들이 평화의 일을 수행할 때 ‘나귀’를 탄 것으로 언급되기 때문입니다(삿 5:10). 예수님을 환영하는 무리가 들었던 종려나무 가지는 초막절 때 사용된 것으로 승리의 표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환영한 군중이 생각한 ‘왕’의 역할과, 진정한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사명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겸손과 순종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영적 메시아이십니다.

본문 이해하기 
본문 속에서 빈 칸에 알맞은 단어를 찾아 기록하고 그 의미를 생각해 보세요.
(개역 개정)
1. 명절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큰 무리가 기다리는 ( )에 입성하셨습니다(12절).
2. 무리는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 )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 )이시여!”라고 했습니다(13절).
3. 수많은 사람의 찬송 소리와 함께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왕이신 예수님은 어린 ( )를 타고 오셨습니다(14절).

정답) 1. 예루살렘 2. 호산나, 왕 3. 나귀

(우리말성경)
1. 명절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 )에 입성하셨습니다(12:12).
2.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 )!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스라엘의 ( )이시여!”라고 했습니다(12:13).
3. 수많은 사람의 찬송 소리와 함께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왕이신 예수님은 어린 ( )를 타고 오셨습니다(12:14).

정답) 1. 예루살렘 2. 호산나, 왕 3. 나귀

인도자를 위한 본문 연구
본문 연구 1: 진리에 대해 무지한 군중(12~15절) 
큰 무리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인 왕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 외친 ‘호산나’는 ‘이제 구원하소서’, ‘우리가 기도하오니 구하소서’라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자유로워지기를 갈망합니다. 정치적, 경제적 억압으로부터 풀려나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갈구합니다. 하지만 죄와 탐욕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라고 말한 사도 바울과는 정반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구약에 예언된 구원자이며 세상을 정복할 왕으로 오시지 않았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지배하는 세상의 왕, 또는 모든 사람을 물질적 풍요로 인도하는 해방자로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은, 평화와 섬김의 주로 오셨습니다. 

본문 연구 2: 영적 진리를 뒤늦게 깨달은 제자들(16~19절) 
요한을 비롯해서 모든 제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일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3년 동안 동고동락한 제자들마저 그 의미를 몰랐다면 그때 호산나를 외치던 군중은 더더욱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메시아가 아니라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참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다스릴 영적 메시아라는 사실을,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경을 풀어 주신 후에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눅 24:25~27, 44~49). 다시 말해서, 성령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영적 비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 2:14). 참된 복음의 진리는 주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주님과 함께 영적으로 통과한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본문 연구 3: 영적 진리를 반대하는 자들의 분노(19절) 
그런가 하면 예수님께 대한 종교인들의 반응은 절망과 분노였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환영하며 길을 메우고 있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절망감과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예수를 음해하고자 했던 그들의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고 모든 백성의 마음이 그들에게서 떠나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적 진리를 알지 못하고 반대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좇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더 큰 적개심을 갖게 됩니다. 자기 의를 의지하고 내세우는 그들은 결국 예수님을 죽이고 스스로 멸망의 길로 들어섭니다.

 

묵상 포인트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이방의 압제에서 구원할 메시아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겸손하게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묵묵히 고난과 십자가를 향해 가신 ‘진정한 왕’입니다. 

▶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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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환호하던 무리는 어떤 왕을 기대하고 있었나요? 나는 예수님께 무엇을 기대하고 구하나요?
심리학 용어 ‘투사’는 자기 마음속에 있는 욕망을 다른 대상자 혹은 대상물에 옮겨 놓는 것을 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로마의 압제로 인한 고통스러운 삶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정치적 메시아이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메시아의 참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여러 가지 문제와 필요에 의해 하나님과 그분의 메시지를 왜곡하거나 오해해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께 실망해서 때로는 하나님을 떠나기로 결론짓기도 합니다. 예수님께 환호하던 무리 속에는 베다니에서부터 예수님을 쫓아온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죽어서 4일이나 무덤 속에 있던 나사로를 다시 불러내어 살리신 예수님의 기적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입니다(17절). 이러한 사람들의 목격담이 예수님을 표적 행하는 자로만 보게 했습니다(18절).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메시아 예수님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나는 지금 무엇을 좇고 있습니까?

2.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지 못했던 제자들이 훗날 진정한 깨달음을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한 군중과 다르지 않았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에게 성경을 풀어 주신 후에야 영적인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눅 24:32). 즉 성령께서 임하셔서 우리의 영적 눈을 열어 주셔야 복음의 진리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26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라는 말씀을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부활 사건이 온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제자들의 인간적인 노력으로는 그것을 알 수 없었습니다. 군중의 맹목적인 갈망으로도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 역시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오직 성령님에 의해서만 십자가의 길과 부활의 영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기도문 
제가 원하는 모습의 하나님만 구하고 찾았던 어리석음을 고백합니다. 오늘도 제게 주신 자리에서 평화와 섬김의 왕이신 주님을 따르게 하소서. 

▶ 나의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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