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성경공부교재

15-10-18 10:39

15년 10월 25일 주일성경공부교재

동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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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악  에스겔 23:1~21

 

인도자를 위한 예화 

T. 드라이저(1871~1945)의 소설 「아메리카의 비극」(1925년)은 현대 사회에서 물질을 유일한 가치와 목적으로 추구하며 탐닉하다가 비참하게 몰락하고 마는 현대인의 비애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클라이드 그리피스’는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일지 모릅니다. 
청년 클라이드는 목회자의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유일한 소원은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자동차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집을 뛰쳐나온 그는 약국 점원을 거쳐 호텔 종업원이 되었고 돈을 버는 대로 유흥비로 써 버렸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동차를 훔쳐 아가씨들과 드라이브를 즐기고 돌아오는 길에 사람을 치어 죽이고 작은아버지 집으로 도피합니다. 그곳에서 작은아버지의 배경을 이용해 상류층 자녀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부호의 딸을 유혹해 결혼까지 약속합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공장에서 일하는 여자 친구 로버타가 있습니다. 아이를 임신한 로버타는 그에게 결혼을 재촉했습니다. 클라이드는 상류사회에 들어가는 데 여자 친구가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해서 결국 그녀를 호수로 유인해 죽이고 맙니다. 클라이드가 그토록 찾던 행복 대신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형장의 싸늘한 전기 의자였습니다. 물질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 인생은 물질을 우상으로 삼아 음행하는 것과 같아서 결국 비참하게 멸망합니다. 

본문 읽기 
성령 안에서 에스겔 23:1~21을 함께 읽습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
 
성령의 조명하심과 인도하심 없이는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본문을 읽기 전에 인도자는 위의 시편 말씀을 상기시키며 성경의 저자이자 최고의 스승이신 성령 안에서 가장 겸손한 마음으로, 갈급한 마음으로 말씀을 읽도록 소그룹 구성원들을 일깨웁니다. 

배경 이해하기 
오홀라와 오홀리바는 한 어머니의 딸로써 언니인 오홀라는 사마리아를, 동생인 오홀리바는 예루살렘을 비유합니다. ‘오홀라와 오홀리바’라는 이름은 ‘장막’을 뜻하는 히브리어 ‘오헬’의 언어유희입니다. 오홀라는 ‘그녀의 장막’, 오홀리바는 ‘그녀 안에 있는 나의 장막’이라는 뜻인데, 각각 사마리아 성전과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두 왕국이 연애하는 대상인 앗수르와 바벨론을 ‘자색 옷을 입은 고관과 감독이요 준수한 청년과 말 타는 자들’(6절), ‘화려한 의복을 입은 고관과 감독이요 말 타는 자들과 준수한 청년’(12절)이라고 묘사한 것처럼,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버리고 외국의 강한 군사력을 의지해서 정권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본문은 이것을 ‘행음’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뜻을 저버리고 외세를 의존했으며 그들의 우상까지 받아들여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오홀라보다 오홀리바의 음행을 더 심각하게 보셨다는 점입니다. 오홀리바는 오홀라의 악행을 반면교사로 삼아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는커녕 오히려 경쟁적으로 앗수르를 더욱 의지하고 갈대아 바벨론과도 행음하기를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교훈을 받지 않고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음행과 같아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합니다. 

본문 이해하기 
본문 속에서 빈 칸에 알맞은 단어를 찾아 기록하고 그 의미를 생각해 보세요.
(개역개정)

1. 음란한 자매 중 언니의 이름은 ( ), 동생의 이름은 ( )이며 언니는 ( )를, 동생은 ( )을 가리킵니다(4절).
2. 오홀라는 행음하여 ( ) 사람을 사모했는데, 그들은 자색 옷을 입은 고관과 감독이요 준수한 청년이요 말 타는 사람입니다(5~6절). 
3. 오홀리바는 붉은색으로 벽에 그린 사람의 형상을 보았는데, 그 용모는 그의 고향 ( ) 사람처럼 준수했습니다(14~15절).

정답) 1. 오홀라, 오홀리바, 사마리아, 예루살렘 2. 앗수르 3. 갈대아 바벨론

(우리말성경)
1. 음란한 자매 중 언니의 이름은 ( ), 동생의 이름은 ( )이며 언니는 ( )를, 동생은 ( )을 가리킵니다(23:4).
2. 오홀라는 행음하여 ( ) 사람을 갈망했는데, 그들은 통치자들과 지도자들로 잘생긴 젊은이들이며 말 타는 사람입니다(23:5~6). 
3. 오홀리바는 붉은색으로 벽에 새겨진 남자들의 모습을 보았는데, 그 용모는 ( ) 태생인 ( ) 장교들처럼 보였습니다(23:14~15).

정답) 1. 오홀라, 오홀리바, 사마리아, 예루살렘 2. 앗시리아 3. 갈대아, 바벨론

인도자를 위한 본문 연구
본문 연구 1: 두 자매 오홀라와 오홀리바(1~4절)

오홀라와 오홀리바는 각각 북 이스라엘의 사마리아와 남 유다의 예루살렘을 비유합니다. 두 자매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정치적 상황을 보여 주는 듯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영적인 배교 상황을 보여 주는 비유입니다. 오홀라는 ‘그녀의 장막’이란 뜻이며, 오홀리바는 ‘그녀 안에 있는 나의 장막’이란 뜻입니다. 장막은 하나님의 성소를 가리키는데, 남 유다의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이 중앙 성소로 인정하신 성전이 있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벧엘과 단에 있는 성소는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여로보암 1세를 비롯한 북 이스라엘 왕들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우상 숭배 처소에 불과했습니다(왕상 12:25~33). 그러므로 하나님은 남 유다의 예루살렘 성전을 ‘나의 장막’으로, 북 이스라엘의 성소를 ‘그녀의 장막’으로 칭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어릴 적에 애굽에서 수치를 당한 경험이 있었지만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은혜의 관계에 속해 자녀를 낳았습니다. 형 오홀라는 북 이스라엘의 사마리아를, 아우 오홀리바는 남 유다의 예루살렘을 낳았습니다. 오홀라가 형으로, 오홀리바가 동생으로 비유된 것은 오홀라 즉 사마리아가 먼저 우상을 숭배하는 음행에 빠졌고, 오홀리바 즉 예루살렘이 그 뒤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본문 연구 2: 오홀라와 오홀리바의 행음(5~21절)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오홀라가 연애하며 행음에 빠졌던 대상은 앗수르입니다. 본문은 앗수르를 ‘화려하고 준수하다’라고 표현했는데, 실제로 앗수르는 강대하고 화려하며 번영한 국가였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화려하고 강한 권세를 가진 앗수르를 의지하며 그들의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대상인 앗수르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징벌하십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앗수르를 의지한 사마리아는 마침내 BC 722년에 앗수르 왕 사르곤 2세의 공격을 받아 온갖 치욕을 당하고 사방으로 흩어지며 멸망합니다(왕하 17:1~6). 

한편 동생 오홀리바의 행음은 언니의 연애 행위에 자극을 받은 질투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녀가 행음한 대상도 앗수르였습니다. 그런데 오홀리바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갈대아 사람(바벨론)과도 행음을 했는데, 그 이유는 갈대아 인을 뛰어난 자로 보고 그들과 같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의 고향 갈대아 바벨론 사람’(15절)이라고 표현한 것은 갈대아 우르 출신이었던 아브라함(창 11:28)의 육적인 고향으로서 바벨론을 동경한 것에 대한 우회적인 책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홀리바는 과거에 그에게 수치를 주었던 애굽 사람까지 찾아가 행음합니다.

 

묵상 포인트 

하나님의 사람이 난관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현실적인 힘을 의지하려는 것은 우상 숭배와 같은 영적 타락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현실적인 유익과 필요에 집착하기보다 하나님 뜻을 먼저 생각하며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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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홀라는 하나님을 망각하고 앗수르를 의지했습니다. 나는 위기 앞에서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현재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나누어 보세요.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할 때 사람들은 세상적인 해결 방법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물질적인 문제, 사업이나 인간관계에 있어서 난관을 만날 때 더 많은 물질과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는 대상을 의지해서 문제를 풀어 가려는 방식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이방의 정치적·군사적 힘을 의지하려고 했던 오홀라의 태도와 동일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것을 ‘음행’이라고 정의하셨습니다. 삶의 문제를 세상적인 힘과 물질을 의지해 해결하려는 것은 전형적인 기복 신앙이며, 이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오홀라’라는 이름은 ‘그녀의 장막’이라는 뜻으로, 자신의 현실적인 이익을 위한 장막, 곧 그들이 우상 숭배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하나님이 지적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힘과 물질을 의지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만유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해야 합니다. 

2. 왜 오홀리바의 죄가 오홀라의 죄보다 더 클까요?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 중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자매인 오홀라와 오홀리바는 한결같이 하나님을 거역한 죄악의 동류였지만 하나님은 오홀리바가 오홀라보다 더 악하다고 평가하십니다. 그 이유는 오홀리바가 언니 오홀라의 실패한 삶을 다 목격하고도 교훈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홀라 즉 사마리아는 우상 숭배를 일삼고 앗수르를 의지하다가 멸망당했습니다(왕하 15:19~20; 17:3~4). 그러나 오홀리바는 사마리아의 멸망을 ‘보고도’ 그것을 교훈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음욕을 ‘더하며’ 앗수르를 의지했습니다(11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더 심각한 타락과 부패의 길로 행했습니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8). 더구나 행음하던 과거를 오히려 동경하여 고향 갈대아 바벨론과 애굽 시절을 생각했습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눅 9:6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다시 옛사람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거스르는 극악한 일입니다. 

기도문 
부와 명예와 물질의 우상에 마음을 빼앗기기 쉬운 세상에서도 오직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따르며, 온 맘 다해 섬기게 하소서. 

▶ 나의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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